지난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삼성화재와의 경기에 나선 우리카드 세터 황승빈(30)의 등엔 이름 대신 서울숲이 새겨져있었다. 우리카드가 연고지 서울의 명소들을 이름붙인 크리스마스 에디션 유니폼이었다. 도심 속 녹지인 서울숲처럼 황승빈은 우리카드에 활력을 불어넣어 승리를 이끌었다.
황승빈은 올 시즌을 앞두고, 삼성화재에서 트레이드돼 우리카드 유니폼을 입었다. 세터 출신인 신영철 감독은 FA(프리에이전트) 취득이 불과 1년 남았지만, 팀에 큰 힘이 될 거라는 기대를 걸었다. 신 감독은 이어 황승빈에게 주장 완장까지 채웠다.
황승빈은 "감독님께서 생각하는 팀의 중심은 배구 코트 안과 밖 모두 세터다. 코트에 들어가서 구심점이 되는 건 물론이다. 감독님께서 주장직을 맡기면서 '세터인데다 고참급인 네가 해달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우리카드는 레오 안드리치가 무릎 부상을 당한 데 이어 대체 선수로 온 리버맨 아가메즈까지 부상을 입는 악재를 겪었다. 하지만 8승 6패(승점 21)를 거두며 4위를 달리고 있다. 1월 복귀 예정인 아가메즈까지 합류하면 순위 싸움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카드 주포 나경복과의 재회가 반가웠다. 두 사람은 인하대 2년 선후배다. 황승빈은 "워낙 출중한 공격수니까 급할 때는 경복이를 찾게 된다"고 웃으며 "트레이드 연락을 받자마자 경복이가 전화했다. '한 팀에서 뛰자고 얘기하지 않았냐'고 하더라. 속내를 잘 아니까 편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세터에게 이적은 어려운 도전이자 과제다. 10명이 넘는 팀내 공격수들이 좋아하는 코스와 구질을 파악해 맞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승빈은 빠르게 팀원들과 잘 맞춰나가고 있다. 시즌 도중에 온 아가메즈와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부상 직전엔 아주 좋은 호흡을 보였다.
황승빈은 풀타임으로 뛴 게 1시즌 밖에 되지 않았다. 대한항공엔 국가대표 세터 한선수(37)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승빈이 군복무하는 동안 유광우(37)까지 입단해 황승빈은 좀처럼 뛸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여러 팀에서 탐내는 기량을 가졌고, 그 덕분에 두 번이나 이적했다. 연봉도 단숨에 리그 10위(6억9000만원, 옵션 포함)까지 뛰어올랐다.
코트 밖에서 보낸 시간은 황승빈의 재산이 됐다. 황승빈은 "많은 분들이 한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못 뛰었다고 하지만, 그 7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코트엔 못 섰지만, 구단에서 내 실력을 인정해줬고, 리그 정상급 선수와 같이 훈련했다. 매일매일 배운게 쌓여 지금의 내 배구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황승빈은 "지금도 선수 형과는 매일 연락한다. 선수 형을 보면서 '참 리더'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황승빈은 "전역 후 마음이 조급해지긴 했다. 하지만 군복무를 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상무에서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주전 세터로 뛰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이 기량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황승빈을 트레이드하기로 했고, 이후 황승빈은 날아올렀다.
황승빈의 올 시즌 목표는 '팀원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다. 황승빈은 "너무 당연한 존재가 되고 싶다. 당연히 잘 해줄 거라는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 어렵게 리시브돼 '못 올리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잘 올려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