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만 20억 발견됐다…'카타르 스캔들' 유럽의회 부의장 해임

중앙일보

입력 2022.12.14 17:03

수정 2022.12.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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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는 올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된 에바 카일리(44) 유럽의회 부의장을 기소 이틀 만에 전격 해임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뇌물 수수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나자 유럽의회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해임을 결정했다.  
 
이번 사건으로 그리스 TV 메가채널의 앵커 출신으로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 유럽의회 부의장 등 탄탄대로를 걸어온 카일리 부의장의 정치 경력은 치명타를 맞게 됐다.

카타르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유럽의회 부의장직에서 해임된 에바 카일리. AF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유럽의회는 이날 카일리 부의장의 해임 안건을 상정해 전체 705명의 의원 중 625명의 찬성을 받아 가결시켰다. 반대는 1명, 기권은 2명이었다.  
 
유럽의회의 해임 결정은 지난 11일 카일리 부의장이 기소된 지 이틀 만에 이뤄졌다. 벨기에 검찰은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자국 이미지 개선을 위해 유럽연합(EU) 정치권에 거액의 뇌물을 뿌리며 로비를 벌인 사건을 조사해왔다. 카일리 부의장은 월드컵 개막 직전 알빈 사미크 알마리 카타르 노동부 장관을 만난 사실이 알려져 의혹이 증폭됐다. 또 이주노동자·성소수자·여성 인권침해 등 각종 논란에 휘말린 카타르를 적극 옹호한 것도 논란이 됐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가운데)이 13일 유럽의회에서 카일리 부의장 해임안을 처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벨기에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150만 유로(약 20억 원)가 넘는 현금이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중 60만 유로(약 8억 원)는 카일리 부의장의 자택에서, 15만 유로(약 2억 원)는 카일리 부의장 소유의 아파트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또 카일리 부의장이 브뤼셀의 한 호텔에서 도난당한 여행가방에선 수십만 유로가 추가로 발견됐다. 그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로스 카일리는 일부 자금을 갖고 도주하려다 기차역에서 체포된 뒤 풀려났다.  


폴리티코유럽은 그리스에 있는 카일리 부의장 가족들의 자산도 자금세탁방지법에 의해 동결됐다고 전했다. 카일리 부의장이 소속된 그리스 정당인 범그리스도사회의주의운동(PASOK)은 지난 10일 그의 당원 자격을 정지하고 제명했다.  

벨기에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발견한 150만 유로. EPA=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카일리 부의장은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카타르로부터 뇌물을 받지 않았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자신을 제명한 유럽의회의 동료 의원들에게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EU 정치인들은 유럽의회를 뒤흔든 부패 스캔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유럽의회 최대 정파인 유럽국민당의 만프레드 베버는 “우리 의회와 동료들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무거운 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은 “우리 의회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민주주의의 적들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의원들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유로뉴스는 이번 스캔들로 유럽 안팎에서 유럽의회의 명성과 신뢰도가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EU 내에선 이번 스캔들을 계기로 불투명한 로비 관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독일 녹색당의 에릭 마르카트 의원은 “신뢰를 잃는 건 쉽지만,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투명성 강화를 위한 성찰과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회는 오는 15일 투명성 강화 방안과 관련 대책을 담은 결의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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