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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카타르 감싼 그녀의 반전 민낯…월드컵 '검은돈'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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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에바 카일리(44) 유럽의회 부의장이 올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 유럽의회는 카일리 부의장을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고 검찰 수사에 철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외신은 “유럽의회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부패 스캔들”이라고 전했다.  

 그리스 출신 유럽의회 부의장인 에바 카일리가 부패 혐의에 연루되 직무를 박탈당했다. AFP=연합뉴스

그리스 출신 유럽의회 부의장인 에바 카일리가 부패 혐의에 연루되 직무를 박탈당했다. AF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벨기에 연방검찰은 카일리 부의장을 포함해 유럽의회 전·현직 의원과 직원 등 4명을 자금 세탁 및 범죄조직 가담, 부패 혐의로 검거·기소했다.  

유럽의회는 EU의 27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입법 기구다. NYT는 “유럽의회는 EU의 3대 핵심 기관 중 가장 영향력은 약하지만, 여론에 대한 영향력이 크고 EU의 중요 정책이 논의되는 곳으로 로비스트의 접근이 흔하다”고 전했다.  

검찰은 카타르가 유럽연합(EU)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거액의 돈이나 상당한 선물을 유럽의회 관계자에게 제공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벨기에 수사당국은 지난 10일, 건물 16곳과 용의자들의 거주지를 급습해 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현금 60만 유로(약 8억원)와 증거물이 담긴 가방, 컴퓨터·휴대전화 등을 압수했다. 이탈리아 매체 라 르푸블라카는 카타르가 2016~2018 사이 카일라 부의장에게 수차례 뇌물을 건넸다고 전했다.

지난 7일 그리스 정치인이자 유럽의회 부의장인 에바 카일리가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도서상 시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7일 그리스 정치인이자 유럽의회 부의장인 에바 카일리가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도서상 시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당초 수사 대상은 6명이었지만, 이중 2명은 기소되지 않고 풀려났다. 벨기에 현지 매체는 카일리 부의장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로스 카일리,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의 사무총장인 루카 비센티코가 풀려났다고 전했다. 체포된 용의자 4명에는 카일라 부의장과 그의 오랜 정치 파트너인 프란체스코 조르지 유럽의회 보좌관, 안토니오 판체리 전 유럽의회 의원 등이 포함됐다고 NYT는 보도했다.

뇌물 스캔들에 유럽의회는 곧바로 대응했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은 10일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카일리 부의장의 권한을 정지시켰다. 카일리 부의장이 소속된 그리스 정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J·파속)과 유럽의회 사회당그룹도 당원 자격 정지와 제명 조치를 취했다.

카일리 부의장은 그리스 메가TV 앵커 출신으로, 2014년부터 유럽의회에서 부의장직을 수행했다. NYT는 카일리 부의장이 월드컵을 앞둔 몇 달 동안 카타르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다고 지적했다. 월드컵 개막 직전인 지난달엔 알빈 마시크 알마리 카타르 노동부 장관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 카일리 부의장은 유럽의회 연설에서 “카타르 월드컵은 스포츠 외교가 아랍 국가의 역사적 변혁을 어떻게 달성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라면서 “카타르는 노동권의 선두주자”라고 발언한 바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이 “월드컵 경기장을 짓느라 이주노동자 6500명이 사망했지만 카타르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과 정반대 주장을 펼친 것이다.

지난 2월 촬영한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974 월드컵 경기장. AFP=연합뉴스

지난 2월 촬영한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974 월드컵 경기장. AFP=연합뉴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부패 스캔들로, EU 내부 기구 중 윤리 시스템이 가장 느슨한 유럽의회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유럽의회 의원이 부업을 가질 수 있는 등 지나친 관대함이 내부의 윤리 의식을 허술하게 만들었고 부패 스캔들의 원인이 됐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니엘 프러인트 유럽의회 반부패 실무그룹 공동의장은 “EU의 영향력은 돈으로 살 수 없다”며 “이번 사건으로 유럽의회가 신뢰를 잃지 않도록, 혐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EU 전문가인 알베르토 알레만노 HEC파리 교수는 “EU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부패 스캔들”이라며 유럽의회 내 감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럽의회는 이번 사건으로 카타르와 관련된 모든 투표나 회담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12일부터 ‘카타르 국민이 최대 90일까지 역내에서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논의가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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