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곡 중 트로트는 반도 안되는데…LA까지 뚫은 임영웅의 힘

중앙일보

입력 2022.12.11 13:42

수정 2022.12.1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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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아임 히어로' 앙코르 콘서트를 진행한 가수 임영웅. 사진 물고기뮤직

 
“400석에서 시작해 4000석, 4만석에서 공연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생생하게 꿈꾸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하죠. 그 꿈을 놓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1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아임 히어로(IM HERO)’ 무대에 오른 가수 임영웅(31)은 감격한 듯했다. 2016년 데뷔한 지 6년 만에 트로트 가수 최초로 고척돔에 입성해 11일까지 이틀간 3만 6000명을 만나는 소회가 남달랐던 것. 지난 5~8월 전국투어(7개 도시 21회차 공연)로 17만명을 끌어모은 지 넉 달 만에 서울ㆍ부산 앙코르 콘서트로 약 7만 5000여 관객을 추가하는 그는 내년 2월 10~11일에는 미국 LA 돌비시어터에서 공연한다.  
 
올해 임영웅은 인상적인 한 해를 보냈다.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우승 이후 지난해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 등 미스터트롯 톱 7을 주축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종영하자 가수 커리어에 집중했다. 지난 5월 발표한 첫 정규 앨범 ‘아임 히어로’는 114만장이 팔려 나갔고, 지난달 더블 싱글 ‘폴라로이드(POLAROID)’ 발표까지 앨범과 공연만으로도 빡빡한 일정을 채워나갔다. 
 

“1년 넘은 곡 아직 차트…말이 되냐”

임영웅은 무대에서 의상을 교체하며 3시간 동안 열띈 공연을 선보였다. 사진 물고기뮤직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뮤지션과의 협업은 그가 트로트에 국한되지 않고 전방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 1집은 이적이 작사ㆍ작곡한 발라드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필두로 설운도가 만든 트로트 ‘사랑해요 그대를’, 래퍼 gong이 만든 레게 힙합곡 ‘아비앙또(A bientot)’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지난해 10월 이문세 원곡을 리메이크한 ‘사랑은 늘 도망가’가 롱런하는 것을 두고 임영웅은 “나온 지 1년이 넘은 곡이 아직까지 차트에 있는 게 말이 되냐”며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한층 다채로워진 셋리스트는 대형 공연장에서도 주효했다.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 위로 펼쳐진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으로 시작한 공연은 여행 콘셉트로 꾸며졌다. 지난달 발표한 자작곡 ‘런던 보이(LONDON BOY)’를 부를 때는 영국 근위병 차림의 백댄서가 등장했고, ‘우리들의 블루스’를 부를 때는 드라마 속 배경처럼 제주의 푸른 바다가 넘실댔다. 프랑스어로 ‘또 만나자’는 뜻의 인삿말 ‘아비앙또’를 언어유희로 풀어낸 영상 ‘아비안도(我備安都)’에서는 왕으로 분해 사극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발라드·댄스·힙합까지 다양한 변주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 등 댄스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진 물고기뮤직

이날 3시간 동안 선보인 20여곡 중 트로트는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사랑역’ ‘계단말고 엘리베이터’ ‘따라따라’ 등 트로트 메들리가 끝나고 관객들이 아쉬워하자 ‘소나기’ ‘미워요’ 등을 한 소절씩 부른 정도였다. ‘미스터트롯’ 경연 당시 선보인 노래 중에서는 김광석 원곡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유일하게 포함됐다. 부캐 임영광과 함께 선보인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댄스 무대나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라틴팝 ‘데스파시토(Despacito)’ 커버 무대 등 이색 선곡도 눈에 띄었다.  
 
스타 PD 출신인 주철환은 “‘미스터트롯’ ‘미스트롯’을 통해 재발견된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가 너무 빨리 소진된 측면이 있다. 반면 임영웅은 꾸준히 자신의 히트곡을 만들어가면서 차별화를 꾀하는 데 성공했다”고 짚었다. 영탁과 김호중도 1만석 규모의 케이스포돔에서 단독 콘서트를 할 정도로 팬덤 규모가 커졌지만, ‘미스터트롯’ 시절을 뛰어넘는 히트곡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주 PD는 “트로트의 3대 정서는 한, 흥, 정인데 임영웅은 곡에 맞게 완급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상품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셈”이라고 덧붙였다.
 

써클차트 7개월째 가수별 점유율 1위 

웬만한 아이돌 그룹도 서기 힘든 고척돔을 가득 메운 임영웅 팬들. 10일과 11일 각 1만8000명, 양일간 3만6000명의 관객이 찾았다. 사진 물고기뮤직

공연마다 연령별 출석체크를 할 만큼 다양한 연령대를 자랑하는 것도 강점이다. 임영웅은 “8세 아이부터 100세 어르신까지 모든 나잇대가 나 있는 신기한 공연장이다.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전 연령대에서 폭넓게 소비하다 보니 음원차트 1위 곡은 없어도 100위권에 10여곡씩 포진돼 있다. 써클차트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400위권 중 임영웅 노래가 16곡으로 점유율 6.2%를 차지한다. 정규 1집을 낸 5월부터 7개월째 가수별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라며 “신곡이 나오면 구곡이 빠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추가되는 건 아이유와 임영웅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덕분에 연말 시상식도 휩쓸고 있다. 지난달 26일 MMA(멜론 뮤직 어워드)에서는 대상 격인 ‘올해의 아티스트’를 비롯해 ‘올해의 앨범’ 등 5관왕에 올랐다. 3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MAMA(엠넷 뮤직 어워드)에서 남자 가수상을 받는 등 K팝 영역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임영웅은 “영웅시대(팬덤명) 덕분에 상(賞)남자가 됐다”며 웃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이 올해 그룹보다 개인 활동에 집중하면서 시상식 시즌에 임영웅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미스터트롯’이 중장년층 팬덤 시장을 새롭게 발굴한 만큼 시즌 2를 시작해도 지금의 임영웅 현상을 뛰어넘긴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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