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무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군대의 피의 소용돌이가 됐다.”(미 NYT)
우크라이나 동부의 작은 도시 바흐무트가 이번 전쟁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헤르손 탈환에 공세를 집중하는 사이 수개월간 러시아군을 막아냈던 바흐무트에 최근 헤르손에서 철수한 러시아 병력까지 대규모로 더해지며 말 그대로 ‘피의 소용돌이’가 되고 있다. 가장 잔혹한 전쟁으로 꼽히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은 전했다.
이전부터 동부 전선 접전지였던 이곳은 러시아 민간 군사기업 바그너(Wagner)에서 차출된 기존 용병에 최근 헤르손에서 철수한 러시아군 병력까지 더해지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고 있다. 이곳 의료진은 “지난 며칠간 러시아군은 더 격렬한 기세로 공격하고 있다”며 “러시아군은 옛 소련 시절처럼 한 병사가 소총 한 자루를 들고 오다가 쓰러지면 다른 병사가 오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응해 우크라이나군도 최근 며칠간 특수부대와 훈련이 덜 된 영토방위대원들까지 동원해 병력을 증원하고 있다.
이는 최근 내린 눈과 비로 우크라이나군 참호가 진흙탕으로 변한 모습과 맞물려 1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적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던 양측은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조악한 참호를 만들어 병사들의 피해를 키웠다. 참호 바닥의 차가운 물 때문에 국소저체온증에 걸리는 참호족(trench foot)이 대표적이다. 피부 괴사를 막기 위해 발을 절단해야 했던 병사들도 많았다.
바흐무트 병원의 의료진은 “참호족과 저체온증에 걸린 병사들이 흔하다”며 “병사들은 보온에 필요한 보급을 받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 그들은 참호 속에서 비를 맞으며 며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고질적인 병참 문제로 방한 장비 부족 문제가 제기되는 러시아군의 경우엔 그 피해가 더 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싱크탱크 해군분석센터(CNA)의 마이클 코프먼 러시아담당연구원은 “러시아군이 진격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비현실적인 정치적 요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기대만큼 진격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NYT는 “최근 바흐무트 전장의 진군은 마일(약 1.6km)이 아닌 야드(약 0.9m) 단위로 이뤄진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우크라이나군도 이 전선을 유지해 러시아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기온이 곧 영하 11도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면서 러시아군이 겨울에 더 험난한 전쟁을 치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프가니스탄 영국군 전 사령관인 리차드 켐프는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겨울철 고통을 키우기 위해 발전소 등에 대한 공격에 나섰지만 낮은 사기와 보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