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12개 연방준비은행은 형식상 민간 상업은행 소유다. 배당도 준다. 정부가 설립한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국은행이나 중국 국무원 소속의 정부기관인 인민은행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셈이다. 미국이 중앙은행을 정부 아래 두지 않은 건 힘의 집중을 막기 위해서다. 토머스 제퍼슨과 앤드류 잭슨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중앙은행 제도에 반대하며 자유시장에 무게를 뒀다. 지금으로 치면 탈중앙화를 추구한 셈이다.
그런 그를 두고 ‘암호화폐(크립토) 업계의 JP 모건’이라는 미국 언론의 평가가 줄을 이었다. FTX가 회생절차를 신청하자 일각에서 중국계 캐나다인인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가 미국계 FTX를 무너뜨렸다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질리언 테트 파이낸셜타임스 미국 편집장은 “프리드의 FTX 제국은 암호화폐 세계의 중개인이자 거래자, 관리자였고 그들에게 권력이 집중됐다”면서도 “분명한 건 자오창펑이 FTT(FTX 자체 코인)를 시장에 풀겠다고 발표해 프리드의 몰락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중국계라고 백안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FTX와 자회사 간의 부도덕한 거래가 알려지며 논점은 암호화폐도 중앙은행이 필요한지로 옮겨 가고 있다. 제임스 매킨토시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는 최근 칼럼에서 “FTX 사태는 중앙은행 없는 중앙화된 금융의 위험성을 보여 준다”며 “뱅크런을 끝내기 위해 중앙은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FTX 사태로 미국이 암호화폐의 중앙은행을 두게 될지는 미지수다. 경제 칼럼니스트 로저 로웬스타인은 뉴욕타임스 딜북을 통해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암호화폐를 국가에 맡기길 원하겠나”라며 반문한 바 있다. 더구나 그 동안 FTX 주도로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추진된 탓에 정계의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결과적으로 위기에 빠진 암호화폐 업계에 새롭게 구세주로 떠오른 건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다. 그는 100년 전 JP 모건과 지난여름 샘 뱅크먼-프리드가 그랬던 것처럼 “FTX 사태의 연쇄 효과를 줄이기 위해 업계 회복 기금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이대로 미국이 암호화폐의 중앙은행을 설립한다면, 윤곽은 그의 별장에서 그려지지 않을까. 전 세계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의 51.6%(크립토컴페어 집계)를 담당하고 있는 바이낸스의 크립토 패권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