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탓’하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2022.11.12 00:26

수정 2022.11.13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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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정치에디터

올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이변과 논란의 연속이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LG가 허무하게 탈락하더니 당초 5강 후보에도 들지 못했던 키움은 언더독의 반란 속에 우승 문턱까지 다가가며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반면 패한 팀 감독들의 경기 총평은 하나같이 뒷말을 남겼다. 1~3위 팀 감독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투수가 못 던졌고 어느 야수의 실책이 컸다”는 패장의 발언은 감독의 판단 착오와 작전 미스가 패배의 더 큰 원인이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팬들에겐 자기변명과 책임 회피로 비칠 뿐이었다.
 
그래서 패한 게 기술적으론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선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게 나았다. 낙심한 팬들을 위해서라도, 매 경기 사력을 다하는 선수들 사기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게 나았다. “태풍이 몰아칠 때 선원들은 파도를 보지 않고 선장 얼굴을 본다”는 경구처럼 그냥 “오늘 패배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란 한마디로 깨끗하게 인정하고 끝내면 될 일이었다. 그런다고 욕할 팬 없을 테고 오히려 다음 경기에선 힘내라며 더 큰 성원을 보내줬을 터였다. 그게 진짜 팬심인데, 당장의 비난을 피하려는 조바심에 결정적인 순간 팬을 믿지 못한 것이었다.
 
‘남탓무죄 내탓유죄’ 만연한 현실 속
정치마저 책임 회피에 급급해서야
 
비단 프로야구뿐이겠는가.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데 감독은 선수 탓, 상사는 부하 탓, 교수는 학생 탓, 선배는 후배 탓, 지휘자는 단원 탓에 아내는 남편 탓, 남편은 아내 탓까지 남 탓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해 있지 않은가. 공직 사회는 또 어떤가. 최근 경제 위기에 고위 관료들은 외부 환경 탓에 세계정세 탓하기 급급하고 심지어 여당 지도부 인사는 이태원 참사에도 전 정권 책임론을 꺼내며 ‘탓’하는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왜 이런 면피주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자기방어 기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 탓이 크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상징되는 자연 상태에 대한 홉스의 진단이 인류 역사상 가장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한 본능이 면피와 남 탓으로 표출되는 것이란 분석이다.


공직자 입장에서도 큰일이 터지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고지식하게 있다간 혼자 다 뒤집어쓰기 쉬우니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란 판단에 어떻게든 면피에 올인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힘없고 양심적인 공무원, 상대적으로 조그만 잘못밖에 없는 실무자만 희생양이 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넘어 ‘남탓무죄 내탓유죄’가 생존의 비법으로 통용되는 게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셈이다.
 
더 나아가 일부 정치인은 판단의 기준 자체를 자기 임의대로 설정해 놓기도 한다. 그들이 남 탓을 하고도 늘 떳떳한 건 그렇게 세운 자신만의 기준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자의적’ 기준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식과 공정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기 십상이란 점이다. 이태원 참사를 다루는 국정감사장에서 고위 공직자가 ‘웃기고 있네’라는 ‘사적인’ 메모를 적은 것도 참사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고 내 책임도 아니라는 자의적 기준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뿐이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에 앞장섰던 주세페 마치니는 “훌륭한 지도자는 부하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어리석은 지도자는 자신의 잘못까지도 부하의 책임으로 돌린다”고 했다. “인자는 자기 탓을 하고 소인은 남의 탓을 한다”는 맹자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교훈이다. 자기방어와 남 탓 전략이 당장엔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깨끗이 인정하면 오히려 유권자들도 기회를 더 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생즉사 사즉생. 정치야말로 반전의 예술임을 정작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으니 오호통재일 따름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