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의 입장 번복 과정에서 신종자본증권이 지닌 위험성이 드러나면서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의 고심도 깊어졌다. 신종자본증권은 일정 시점 마다 만기를 영구적으로 연장할 수 있어 영구채로 불린다. 이 때문에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돼 기업들의 자기자본 확충 수단으로 널리 활용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만기를 계속 연장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국내 보험사들이 그간 관행적으로 조기 상환을 해온 터라 이를 미뤘다간 자칫 '신뢰 상실' 기업으로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구채 아닌 영구채'가 신용 리스크를 촉발할 수 있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만기 연장 기능이 없는 영구채가 어떤 효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그렇다고 기존 영구채를 중도 상환하자니, 금융당국이 권고한 자본 건전성 수준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내년 중도 상환 영구채 14조6000억
시장금리 오를 땐 발행기업은 만기 연장이 유리
그러나 시장금리가 영구채 만기 연장 금리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선 중도 상환을 하지 않는 것이 발행 기업에 더 유리할 때도 있다. 가령 흥국생명이 중도 상환을 하지 않을 경우 영구채 금리는 기존 4.475%에서 6.7% 수준으로 오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발행금리가 7%에 육박하는 상황에선 중도 상환보다 만기 연장이 유리하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흥국생명의 경우 영구채를 중도 상환하면 (보험사의 자기자본비율인) 지급여력비율(RBC 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며 “회사 입장에선 만기 연장을 하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5년 만기 회사채' 된 영구채..."자본 맞아?"
신용평가사들은 영구채 발행기업들이 다가오는 중도 상환 시점에 어떻게 대응할 지 눈 여겨 보고 있다. 영구채 상환 이후 재무 지표가 악화하는 기업들은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원하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향후 진행 상황을 봐야겠지만, 영구채를 갚으려고 또 돈을 빌리면 부채 급증으로 신용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 황 연구위원도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금융회사들은 영구채 상환 이후 적기시정조치(자본을 빨리 확충하라는 금융당국의 행정조치) 대상에 들어갈 수 있는 등 코너에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