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급한 한국 관광] ‘올인하우스’도 ‘도깨비’ 세트장도 반짝 흥행 뒤 돈 먹는 흉물로 전락

중앙일보

입력 2022.10.29 00:52

수정 2022.10.2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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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지. [사진 인천 중구]

깨진 유리창, 벗겨진 페인트칠, 녹슨 구조물. ‘올인하우스’라고 불리는 드라마 올인 세트장의 현 모습이다. 올인은 2003년 최고 시청률이 무려 49.1%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제주 서귀포시 섭지코지에 설치된 이 세트장을 찾는 관광객은 한때 연간 100만명 이상이었다. 하지만 점차 발길이 줄어들며 2015년부터 운영이 중단됐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유치한 상당수 드라마 세트장이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관광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수억, 수십억원의 세금을 들여 조성해 결국 관광 경쟁력을 좀먹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2003년 인기를 끌었던 또 다른 드라마 ‘천국의 계단’과 2007년 ‘칼잡이 오수정’을 촬영했던 인천 광화군 무의도의 드라마 세트장 역시 흉물이 됐다. 2017년 정밀안전진단에서는 건물 2개동이 각각 B등급(건물 보수 필요), E등급(건물 사용 금지) 판정을 받았다. 인천시는 현재 철거 등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드라마 ‘주몽’과 ‘도깨비’ 촬영지로 주목 받았던 나주 영상테마파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37억원을 들여 오픈했지만 방문객 수가 줄어들며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결국 2006년 개장 이후 17년만인 내년에 철거가 결정됐다. 해당 부지엔 의병역사박물관이 건립된다.
 
원자력발전지원금 30억원을 투입해 지은 울산시 울주군 간절곳 드라마 세트장도 철거할 예정이다. 2010년 드라마 ‘욕망의 불꽃’ 촬영을 위해 지어진 이 세트장은 드라마 ‘메이퀸’과 영화 ‘한반도’ 등의 촬영지로 한때 명성을 누렸다. 울주군은 2011년 10억원을 들여 골조와 외벽을 보완했고,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연 평균 1억원을 보수·유지에 투입했다. 하지만 건물안전진단 결과 C등급이 나오자 철거를 결정했다. 영화 ‘명량’과 ‘한산’을 촬영한 여수시 진모지구 세트장도 제작사와의 임대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내년 2월 이후 철거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우후죽순 세트장을 짓는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택광 문화평론가(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문경세재 오픈세트장처럼 일부 성공 사례가 있다 보니 여러 곳에서 무분별하게 개발이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무분별하게 세트장을 짓는 관행을 근절하고, 세트장 건설 허가에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인위적인 세트장이 아닌 실제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를 찾는다.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영화 ‘중경삼림’의 촬영지로 랜드마크가 됐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이 인기를 끌며 영화에서 배경으로 등장한 장소를 방문하는 일본 여행상품도 출시됐다. 미국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온 배경지를, 프랑스 파리를 찾은 이들은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나온 카페와 식당을 찾아 간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역시 마찬가지다.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찍은 삼성동 아셈타워,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가 자주 찾던 녹사평역 인근 육교를 방문한다.
 
이 평론가는 “우리가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찾는 이유는 그 도시만의 분위기와 리얼리티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 드라마도 최근 인기를 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촬영한 도심지처럼 자연스러운 한국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관광 자원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