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더블 트러블’…삼성전자 영업익 32% 감소

중앙일보

입력 2022.10.08 01:17

수정 2022.10.0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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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겨울’ 파장

5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 데이’ 행사에서 삼성전자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전략이 발표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시장 전망치에 미치지 못하는 3분기 실적을 내놨다.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실적이 악화하면서 영업이익이 3년 만에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역성장을 기록했다. 4분기와 내년 상반기 역시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와 제품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당분간 ‘반도체 겨울’이 지속할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잠정 실적을 집계한 결과 매출 76조원, 영업이익 10조8000억원을 기록했다고 7일 공시했다. 매출은 지난해 3분기(73조9800억원)와 비교해 소폭(2.7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1.73%나 감소했다. 매출 70조원 이상은 지켰지만 수익성이 크게 악화한 것이다.
 
영업이익은 2019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줄었다. 금융투자 업계는 당초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을 매출 78조원대, 영업이익 11조~12조원대로 전망했는데 시장의 예상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이 같은 전망치가 최근 반도체 경기 침체에 따라 상당 부분 하향 조정됐던 것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어닝 쇼크’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실적 하락의 주된 요인은 메모리 반도체의 부진이다. 판매가격은 하락하고 수요도 감소하는 ‘더블 트러블(Double Trouble)’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낸드플래시 가격이 15~20%, D램 가격이 13~18%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서버(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수요가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경제 갈등이 심화하고 고금리와 에너지 위기 등으로 세계 경기가 위축하면서 실제 시장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아울러 고환율(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이익도 지난 분기 대비 줄었을 것이라는 게 삼성전자 내부의 판단이다. 삼성전자는 환율이 오를 때 세트 부문에서는 부정적 영향을, 반도체 부문에서는 긍정적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당분간 반도체 업황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0.75%씩 올리는 것)’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에 지정학적 위기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반도체 시장의 감산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이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 3위 업체인 마이크론은 5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실적 자료를 통해 투자 계획 조정을 발표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수급 환경이 좋지 않다”며 “다운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보다 웨이퍼 팹(Fab) 장비나 설비 투자를 50% 가까이 줄이는 등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2023 회계연도) 설비 투자도 30% 줄일 계획”이라며 “공장 생산량과 장비 구매 예산 모두 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 업황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면서 이 같은 결정을 공식화한 것이다. 재고가 쌓이면 기존 계획대로 생산을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만큼 결국 본격적인 감산 수순에 나서는 분위기다.
 
트렌드포스는 “반도체 시장에 재고가 쌓이면서 수요가 줄어 마이크론 등 메모리 업체들이 감산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D램은 아직까지 계약 비용이 생산 비용보다 높고, 낸드플래시와 비교해 생산량을 줄일지는 두고 봐야 한다”면서도 “낸드플래시는 D램보다 시장 상황이 심각해 주류 용량의 웨이퍼 평균 계약 가격이 하락하면서 제조 업체에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반도체 시장 1위인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감산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1년 정도 업황 악화로 고전할 수 있지만, 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공급에 손대지 않고 기술 초격차와 생산 라인 효율화에 매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삼성전자 측의 판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메모리의 경우 실제 경기나 수요와 상관없이 가격이 오를 것이라 예측하면 재고를 늘리고,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기대될 때 사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감산 대신 라인 효율화로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전문 업체의 경우 내년 이후 적자를 우려해 투자 축소나 공급 조절이 불가피하지만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삼성전자는 감산하는 게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당장 다음 분기나 내년 초의 실적은 악화할 수 있겠지만 경쟁 기업들이 공급 조절을 통해 업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 그 이후엔 회복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업황의 등락이 큰 반도체 산업 특성상 불황이 장기화하진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수요 위축과 계절적 비수기 영향 등으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메모리 업황이 어렵겠지만 (내년) 4분기부터는 의미 있는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며 “스마트폰 등 완제품의 판매 감소가 가파르게 진행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는 게 중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