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경고에 작가들 반발...'윤석열차'發 표현의 자유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22.10.05 17:28

수정 2022.10.0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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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준비한 '윤석열차' 만화 관련 자료화면을 보고 있다. 뉴스1

 문화체육관광부가 윤석열 대통령 풍자만화에 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만진원)에 경고 조치를 내리자 만화가들이 집단 반발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7~8월 만진원이 연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고등부 카툰 부문에서 A군이 ‘윤석열차’라는 작품으로 금상(경기도지사상)를 탄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카툰과 웹툰, 캐릭터 총 3개 부문으로 치러진 공모전의 주제는 자유였고 만진원은 무작위 선정한 심사위원단이 지난 13일 58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작품들은 지난달 30일~지난 3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 전시됐다. 
 
 
 
‘윤석열차’는 윤 대통령의 얼굴이 달린 증기기관차가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캐릭터와 법복을 입고 칼을 든 인물들을 실은 채 철로 위를 달리는 그림이다. 열차가 지난 자리에는 부서진 건물이 남아 있고, 열차 앞엔 이를 피해 혼비백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공모전을 후원했던 문체부는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문체부는 지난 4일 두 차례 설명자료를 내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며 후원명칭 사용승인 사항 위반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공모전 개최 계획상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표절 소지가 있는 작품을 결격사항으로 두고 있는데, 심사위원에게 이 점이 공지되지 않았고 순수창작품 여부도 깊이 있게 검토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해당 작품이 2019년 영국 일간지 ‘더 선’에 게재됐던 만평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문체부는 설명자료에서 만진원에 정부 예산이 지원되고 있고, 훈령 상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후원 명칭 사용승인을 취소하고 3년간 사용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자 한국웹툰협회가 곧바로 4일 입장문을 냈다. 협회측은 “카툰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적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라며 “사회적 물의’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를 핑계 삼아 노골적으로 정부 예산 102억원 운운하며 헌법의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웹툰협회는 그러면서 “‘블랙리스트’ 행태를 아예 대놓고 거리낌 없이 저지르겠다는 소신 발언은 실소를 넘어 경악할 지경”이라며 “주무 부처가 백주대낮에 보도자료를 통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분야 길들이기와 통제 차원에서 국민 세금을 제 쌈짓돈 쓰듯 자의적으로 쓰겠다는 협박이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비판했다. 웹툰협회를 비롯한 만화·웹툰계 단체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공동 성명도 준비하고 있다.
 

문체부 “정치적 주제 노골적 다푼 작품…행사 취지 어긋나”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고교부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확산중이다. 5일 국회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도 문제가 된다” “문체부 공무원들의 직권남용이자 심사위원 겁박”이라며 맹공했다. 이날 국감에 참석한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순수한 예술적 감성으로 명성을 쌓은 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변색시킨 만진원을 문제 삼는 것”이라며 “작품 심사 선정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색채를 빼겠다고 해놓고서, 그 조항을 삭제하고 공모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은 “신종철 만진원장은 민주당 소속 경기도의원을 지내고 20대 총선 예비후보까지 했던 민주당에 가까운 인사로, 만화 경력이 전무한데도 임명됐다”고 지적했다.
 

정권마다 재소환되는 표현의 자유 논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정치인에 대한 풍자에 이은 표현의 자유 논란은 정권 때마다 발생했다. 풍자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해야 하는지 등이 쟁점이었다. 2019년엔 한 시민단체 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악당 타노스를 합성한 그림을 배포하다가 문 전 대통령에게 모욕죄로 고소를 당했고, 2014년엔 광주 비엔날레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표현한 홍성담 작가의 그림 전시가 유보됐었다. 
 
 한편 만화·웹툰계 내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문체부가 웹툰업계 현안 해결을 위해 작가단체와 제작사·플랫폼, 법조계와 학계까지 아울러 진행 중인 웹툰상생협의체 논의에도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작가는 “블랙리스트로 찍혀 지원 사업 등에서 배제되면 어쩌나 걱정하는 작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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