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복마전
〈글 싣는 순서〉
1. 갈 길 바쁜 재건축·재개발 사업, 비리가 발목 잡았다
2. 비리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허위 사업비와 만능 키 OS
3. 반성 없는 사업, 조합원이 똑똑해야 부패가 사라진다
1. 갈 길 바쁜 재건축·재개발 사업, 비리가 발목 잡았다
2. 비리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허위 사업비와 만능 키 OS
3. 반성 없는 사업, 조합원이 똑똑해야 부패가 사라진다
지난 2018년 초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 조합은 J 철거업체와 석면 해체 용역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액은 약 60억원. 앞서 이 조합은 철거할 건물에 석면이 얼마나 있는지를 조사하는 용역에도 약 13억원을 썼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법 위반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시공사와 도급 계약을 맺을 때 철거를 포함해야 한다. 석면 철거 공사 역시 시공사가 해야 한다.
이는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한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조합과 철거업체의 ‘불필요한’ 접촉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석면 해체뿐 아니라 석면 조사 역시 철거 공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공사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 너머: beyond news]
뒷돈, 부풀려진 공사비…"현금 거래, 적발 어려워"
밀실 수의계약은 물론 불필요한 계약에 조합 돈이 줄줄 새는 곳이 부지기수다. 조합원 동의(의결) 없이 용역 계약을 맺고, 조합원 총회 의결을 거치더라도 조합원들이 알지 못하게 계약 금액을 부풀리는 경우도 많다.
지장물 철거도 부풀리기…처벌은 드물어
그런데, 대부분의 조합이 이를 무시하고 철거업체와 지장물 철거 계약을 맺는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조합은 아예 수도‧전기‧가스관 철거를 분리해 3곳의 업체와 각각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 지역 조합원은 “지장물 철거를 3곳에 분리 발주하고 용역비도 과도하게 계약했다”며 “조합 측에 항의했지만, 다른 조합도 다 마찬가지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재개발 조합처럼 사업시행인가(건축 허가)도 나기 전에 철거업체와 지장물 철거 계약을 맺고 계약금을 선지급한 사례도 적지 않다.
허술한 계약 내용은 비리를 더욱 부추긴다. 서울의 한 재개발 조합은 2018년 16억원에 모 철거업체와 지장물 철거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계약서에는 구역 면적만 표시돼 있고, 구체적인 공사 기간이나 인력 투입 등의 내용이 전혀 없다. 이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계약 내용도 제대로 모른 채 찬성 결의서를 내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6~2019년 광주 지역 13개 재개발 조합은 철거업체와 300억원가량의 지장물 철거 계약을 각각 맺었다. 대부분 상수도와 가스‧전기시설, 가로등 철거 용역이었다. 철거 면적과 가구 수가 비슷한데 계약금액이 2배 이상 차이 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광주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 대부분은 ‘혐의 없음’이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하거나 수사 종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토부에서도 시공사가 아닌 다른 업체와 철거 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있는데도 조합 의결을 거친 계약서대로 계약이 이행됐다는 이유로 경찰이 면죄부를 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범죄예방 용역'부터 '법률자문'까지
법률 자문이라는 명분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계약도 이뤄진다. 부산의 한 재개발 조합은 법무법인도 아닌 개인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과 소송 업무 등을 맡기는 대가로 45억원을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지역 조합원은 “소송 건별로 수임 계약을 하는 게 대부분인데, 로펌도 아닌 개인 변호사와 이런 과도한 계약을 맺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 이주관리 용역, 수방·제설 대책 용역, 국공유지 무상 양도 용역 계약 등에서 허위 혹은 부풀리기 사업비 사례도 적지 않다. 또 총회 홍보(OS) 용역이나 정비기반시설 공사 계약 때 산정 근거도 없이 과도한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정비사업 전문가인 김상윤 법무사(저스티스파트너스 대표)는 “조합원이 눈뜨고도 모르는 돈들이 각종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줄줄 샌다”며 “이는 결국 조합원들의 재산상 손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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