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점 찍어 투표용지 바꿔치기" 내부 증언 터진 잠실5단지 [재건축‧재개발 복마전 1-①]

중앙일보

입력 2022.10.04 02:00

업데이트 2022.10.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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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재건축‧재개발 복마전

서울‧경기와 6대 광역시에서 추진 중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은 1625곳이다. 서울이 592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도는 370곳이다. 광역시 중에는 대구가 244곳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부산(205곳), 대전(83곳), 인천(74곳), 광주(40곳), 울산(17곳) 순이다.

[뉴스 너머: beyond news]

전국적으로 재건축‧재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분쟁‧소송이 없는 곳을 찾기는 힘들다. 오죽하면 ‘조합 있는 곳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합원 간 내부 갈등이 심각한 것이 대한민국 도시정비사업의 현실이다.

중앙일보는 수십 년 째 반복되고 있는 도시정비사업의 복마전을 추적했다. 조합장과 임원들을 둘러싼 각종 비위와 갈등·의혹의 현장, 허위 내지는 부풀려진 용역 사업비의 실태를 면밀히 들여다봤다. 또 비리가 반복되는데도 왜 근절되지 않는지도 살펴봤다.

〈글 싣는 순서〉
1. 갈 길 바쁜 재건축·재개발 사업, 비리가 발목 잡았다
2. 비리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허위 사업비와 만능 키 OS
3. 반성 없는 사업, 조합원이 똑똑해야 부패가 사라진다

지난달 15일 잠실5단지 재건축비대위의 조합원들이 서울동부지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수민 기자

지난달 15일 잠실5단지 재건축비대위의 조합원들이 서울동부지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수민 기자

“조합 선거 때문에 DNA 검사까지 받는 일이 벌어지다니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상가 근처에서 만난 한 조합원이 푸념했다. 그는 "2015년에도 전임 조합장 뇌물 사건이 터져 한동안 단지 전체가 뒤숭숭했었다"며 "이번에는 부정 선거 의혹이라니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준공된 지 45년을 맞은 잠실5단지는 7년 전 재건축 계획안이 마련됐고, 6800여 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이곳에선 2016년 1월 재건축 조합장, 이사, 대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이후 당시 선거가 부정 선거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지난해 5월 서울 송파경찰서는 조합장, 자문단장, 협력업체 관계자 등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고, 이들을 선거에 개입해 조합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동부지검은 혐의자들을 상대로 소환조사를 벌였지만 진술은 엇갈렸다. 조합 측은 "투표 조작 등 선거업무를 방해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협력업체 관계자는 "당시 조합원들의 투표용지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선거를 조작한 사실이 있다"고 실토했다. 이들의 진술이 엇갈리자 검찰은 투표용지와 봉투에 남아 있는 DNA와 사건 관련자들의 DNA가 동일한지 아닌지를 조사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선거관리위원도 아닌 사건 관련자의 DNA가 투표용지와 봉투에서 검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조합 측은 "투표용지를 우연히 건드렸을 수는 있지만 조합 관계자가 이를 고의로 바꿔치기하는 등의 부정행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인 서울스카이서 바라본 잠실주공5단지 일대. 연합뉴스

지난해 4월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인 서울스카이서 바라본 잠실주공5단지 일대. 연합뉴스

중앙일보는 취재 과정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복수의 내부 제보자로부터 투표용지 바꿔치기에 대한 구체적 증언을 들었다. 또 당시 후보자 중 당선시켜야 할 대의원 후보들을 미리 표시한 일명 '정답표'(찍어야 할 후보자 옆 칸에 표시가 돼 있는 용지)가 있었다는 새로운 주장도 들을 수 있었다.

내부 제보자 A씨는 "투표용지 바꿔치기는 조합 사무실 건물 주차장에 있는 한 외제 승용차 안에서 이뤄졌다"며 "조합 관계자와 홍보도우미 2명 등 모두 3명이 투표용지가 담긴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고 미리 기표가 된 다른 용지로 바꿔치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보자는 "조작이 끝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기 위해 사전에 투표용지가 담긴 봉투에 아주 작게 '비밀 점'을 찍어 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경찰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점이 찍힌 봉투가 발견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제보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투표용지 바꿔치기가 이뤄진 것은 적어도 500장 이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합 측은 "선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선거관리위원회 측의 책임이다"라며 "투표용지 바꿔치기 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현재 서울‧경기와 6대 광역시에서 추진 중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은 1625곳이다. 잠실5단지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현장에선 각종 고소·고발, 소송전이 줄을 잇고 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이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마전 같은 실태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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