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으면 덜 더울까, 고심하는 계절이 됐다. 이렇게 한창 더울 때는 찰기 넘치게 호로록 입안으로 들어서는 면식을 멈추기가 어렵다. 하얗고 가느다란 소면, 아니 그보다 더 얇은 세면을 장국에 푹 찍어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끼는 그 찰나의 청량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식단 관리를 하는 중이니, 소면이나 세면을 대체할 방법을 고민해본다. 사실 나는 워낙에 면식을 좋아해서, 시중에 판매하는 일반 면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들을 고루 접해봤다. 실곤약부터 다시마면, 미역면, 두부면 등이다. 선택지는 많았지만 후각에 예민한 나는 각 제품이 가진 특유의 향이 거슬렸다. 차라리 일반 면을 먹고 스쿼트를 더 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해질 정도로.
그러던 와중 ‘국수호박’이란 작물을 알게 됐다. 작년이었던가, ‘마마리 마켓’의 송하슬람 대표가 스페인에서 일하던 시절 접했다는 국수호박의 사진을 내게 보여줬다. 가열하면 호박 안쪽의 살이 국수처럼 풀어지는 신기한 작물이다. 그래서 ‘스파게티 호박(Spaghetti squash)’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국수호박은 1999년 일본에서 처음 개발된 품종으로 국내에서는 가평에서 특산물로 재배되기도 한다. 호박을 가로로 잘라 속 씨를 발라낸 후 끓는 물에 15분 정도 삶으면 살 부분이 투명해진다. 그럼 차가운 물에 식혔다가 손에 힘을 줘 조물조물 누르면 신기하게도 흐트러진 실타래 같은 면발이 나온다. 이렇게 나온 면을 넣고 채수나 육수에 간을 해서 먹어도 좋지만, 밀가루 반죽에 더해 치대어 수제비를 끓여 먹기도 좋다.
국수호박을 비빔장에 비벼볼까 고민하다, 여름 채소를 맛있게 먹기 위해 생각을 바꿨다. 우선 냉장고에 있던 여름 채소를 그릴 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가지와 단호박, 브로콜리니, 잎새버섯, 아스파라거스(다른 여름 채소여도 좋다) 등이다. 이때 오일은 올리브오일이나 아보카도 오일 같은 식물성 오일을 쓴다. 구운 채소는 살짝 식힌 후에 보관 용기에 옮긴 후 메밀 장국 소스를 자박하게 부어 냉장고에 하룻밤을 재워 둔다.
메밀을 먹을 때 쓰는 장국 소스는 4배 정도로 농축된 진한 맛이다. 이 장국 소스를 면과 섞을 때는 차갑게 냉침한 멸치 육수를 더해 간을 묽게 하는 게 좋다. 장국의 간은 기호에 따라 6배까지 묽게 풀어 먹을 수도 있다. 여기에 사각거리는 살얼음을 더하면, 그야말로 부러울 것이 없어진다. 구운 채소는 장국에 짭쪼름하게 절여져, 먹는 내내 싱거운 맛이 겉돌 겨를이 없다. 가볍게 먹을 수 있으면서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줄, 완벽한 여름 별미다.
Today`s Recipe 김혜준의 여름채소호박면
재료 준비
만드는 법
1. 멸치 육수 1봉을 1ℓ의 물에 담가 냉장고에 보관(냉침)해둔다.
2. 채소를 손질해 그릴 팬 또는 일반 프라이팬에 굽거나 오븐에 기름을 둘러 굽는다. 이때 장국 소스가 진하기 때문에, 채소에 따로 소금 간을 하지 않는다.
3. 한 김 식힌 채소를 밀폐 용기에 담고 메밀 장국을 자박하게 붓는다. 채소에 장국 소스의 간이 스며들도록 냉장고에 2시간 정도 보관한다.
4. 국수호박을 가로로 잘라 속을 파낸 후, 끓는 물에 15분 정도 삶는다. 속살 부분이 투명한 노란색이 될 때까지 삶는다.
5. 삶은 국수호박은 차가운 물에 담가 식히며, 국수호박의 살이 실처럼 풀어지도록 두 손으로 조물조물 눌러준다.
6. 국수호박 면을 손으로 짜서 물기를 제거한 후 넓은 면기에 담는다.
7. 냉장 보관한 절임 채소들과 장국 소스를 면기에 붓고, 여기에 냉침 육수를 더해 묽게 풀어준다. 기호에 맞게 간을 조절해 완성한다.
김혜준 푸드 콘텐트 디렉터 cook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