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를 통해 나의 취향이 분석되어 나에게 꼭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큐레이션은 우리 두뇌의 온갖 편견과 확증편향을 강화시킬 위험이 높다. 무엇보다도 큐레이션의 목표가 소비자를 향한 마케팅이나 설득이라는 점이 우려스럽다. 더 잘 팔리는 책을 고르기 위한 북큐레이션을 하다 보면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독자를 그저 소비자로 바라보게 되고, 재테크의 관점에서 미술품을 바라보게 되면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보다는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를 계산하게 된다. 나는 우리가 대기업이나 유명인사의 큐레이션에 의존하기보다는 ‘나의 눈과 귀, 나의 결단과 직감’을 믿고 진정으로 사랑할 대상을 직접 찾아내는 감성의 훈련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정보홍수시대에 선별 필요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능력 퇴화할 수도
내 취향 분석당하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 지켜야
스스로 느끼는 능력 퇴화할 수도
내 취향 분석당하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 지켜야
그렇다면 ‘나를 믿고 시작하는 나만의 큐레이션’을 위해서는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첫째, 온갖 전문가들이 추천한 최고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내가 나의 언어로 내 감동을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을 천천히 찾아보는 것이다. 둘째, 교환가치나 가성비가 아니라 사용가치와 진정한 심리적 가치를 평가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섯 개의 작품 중에서 내게 맞는 작품 딱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섯 개의 작품을 빠짐없이 보고 나의 언어로, 나의 마음으로, 그 모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셋째, 틀릴 자유, 망가질 자유, 방황할 자유를 느껴보자.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만 급하게 돌아볼 것이 아니라, 무작정 ‘소설’이나 ‘에세이’ 코너로 돌진하여 내게 감동을 주는 문장을 기어이 찾아낼 때까지 서점에서 버텨 보는 것이다. 멋진 서점이나 도서관은 아름다운 책들의 숲속을 거리낌 없이 방황할 자유를 선물한다. 무작정 아무 책이나 읽고 또 읽을 자유를 즐겨 보는 것이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나’의 미래를 레고모형처럼 철저히 조립할 것이 아니라, 틀려도 괜찮고, 망가져도 괜찮고, 방황해도 괜찮은 나를 만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발 빠르게 미리 다 고른 책’을 선물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책을 천천히 고를 시간을 주고 왜 그 책을 골랐는지 이야기해 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대단한 책 딱 하나만 골라내는 큐레이션과 반대로, 나는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는 ‘전작주의자(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빠짐없이 읽고 그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 나는 요즘 김훈 작가의 『저만치 혼자서』에 푹 빠져 그의 모든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 행복한 전작주의자의 꿈을 꾸고 있다. 발터 벤야민, 버지니아 울프, 카를 구스타프 융, 김소연, 권여선, 윤이형은 내 머릿속에서 항상 펼쳐져 있는 책갈피의 주인공들이다. 나도 모르게 세 번이나 읽은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다. 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추천콘텐츠를 일부러 피하는데, 내 취향이 거대기업에 분석당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영혼을 도둑맞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 어떤 통계로도 분석당하지 않는 마음, 분류당하거나 통계화되지 않는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이야말로 우리가 저마다 지켜야 할 ‘나다움’이 아닐까.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사랑했던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그 모든 것들은, 끝내 빠짐없이, 모든 부분이 소중하니까.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은 끝내 눈부시게 빛나니까.
정여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