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운석이 떨어지자 하얀 드레스 차림의 단발머리 여성이 몽환적 모습을 드러낸다. 화면이 바뀌면서 이 여성은 최신 유행하는 트레이닝 바지와 크롭티를 입고 나타나 마트와 오락실 등에서 댄서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한다-.
지난 5월 말 공개된 버추얼 휴먼(가상인간) 한유아의 신곡 ‘I like that’ 뮤직비디오 장면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 공개된 지 닷새 만에 조회 수 600만 회를 돌파했으며, 10일 기준으로는 708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한유아는 광동 옥수수수염차 광고 모델로도 활동 중인데, ‘옥쓔(옥수수수염차) 댄스’ 티저 영상 역시 유튜브에서 100만 회 넘게 조회됐다.
한유아 뮤비 5일 만에 600만 회 조회
2002년생으로 소개되는 한유아가 스마일게이트의 가상현실(VR) 게임 ‘포커스온유’ 주인공 캐릭터로 데뷔한 것은 2019년 7월이다. 스마일게이트가 가상인간 제작을 구상한 것은 훨씬 오래전이다.
이 회사 백민정 지식재산권(IP)사업 담당(상무)은 “2016년 말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스마일게이트 창업자)가 ‘곧 버추얼 셀러브리티(유명인)가 세상에 올 것 같다.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고 한 마디 던진 게 시작”이라며 “포커스온유를 출시하면서 한유아를 인격이 있는 인간처럼 키워보기로 했다”고 떠올렸다.
게임·엔터 수장들 “가상공간=미래 비전”
다만 이런 기술은 일방향성이라 상호 작용이 어렵다. 자이언트스텝은 여기에다 리얼타임 엔진 기술을 더해 실시간으로 현실 인간과 대화하거나 소통하도록 기획했다. 목소리도 AI로 합성해 제작했다.
기존 엔터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음반 작업이 현실 아티스트와 작업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음반 제작 총괄을 맡은 김정하 CJ ENM 팀장은 “게임을 통해 이미 학교 후배, 동네 여동생 같은 캐릭터가 형성돼 있었다. 이런 콘셉트의 여성 솔로 신인 아티스트를 제작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도희킴 안무가도 “인물의 서사가 풍부해 제작 내내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던 것 외에는 다른 여성 솔로 가수의 안무를 만드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 제작을 담당한 바이킹스리그의 이중원 감독은 “다만 아직 대중과 거리감이 있어 이를 줄이기 위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영상에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돈보다 혁신, R&D 과정으로 생각”
팬 미팅이나 콘서트 같은 대면 활동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지만 엔터 업계 전문가들은 가상인간의 전망을 밝게 봤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 새로운 채널을 활용한 팬덤을 기대할 수 있는 데다 확장현실(XR) 기기 출시로 가상인간 수요가 늘 수 있어서다. 글로벌 마케팅 분석 업체 하이프오디터는 가상인간을 활용한 마케팅 시장이 올해 150억 달러(약 19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임·엔터 업체들의 IP 개발 니즈와 ‘K엔터’의 영향력 확대 역시 긍정적 요인이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는 현실 가수인 에스파와 이들의 가상 아바타가 함께 활동하게 하는 등 메타버스 엔터 사업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백민정 상무는 “가상인간 사업은 당장의 매출이 아닌 혁신과 연구개발(R&D)을 위한 과정”이라며 “한유아 자체가 하나의 IP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에서도 뜨는 스타가 따로 있듯 가상인간 역시 옥석이 가려지면 대중의 피로도도 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