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반드시 실패해야…나토 동진이 원인? 러 주장은 난센스" [주한 유럽대사 연속인터뷰] ①

중앙일보

입력 2022.05.17 05:00

수정 2023.01.2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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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폭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 군사위기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안보 질서를 흔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초유의 단합 속에 대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고 중립국인 핀란드·스웨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도 현실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80여일을 맞아 이번 전쟁의 의미와 해결책을 찾고 한국과 유럽의 안보·경제 협력을 모색하고자 주한 유럽대사 4인을 순차 인터뷰했다. ①콜린 크룩스 영국대사 ②필립 르포르 프랑스대사 ③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대사 ④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EU 대사 순으로 소개한다.

콜린 크룩스 영국 대사가 2일 오후 서울 중구 영국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주한 유럽대사 연속인터뷰 ① 콜린 크룩스 영국대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반드시 실패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세계 모든 나라가 ‘침략 행위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길 바랍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영국 대사관저에서 만난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는 인터뷰 내내 '푸틴의 실패'를 국제사회 과제로 강조했다. 영국은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를 지급하고,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러시아 은행 등 개인·기구에 대한 제재를 신속하게 시행하는 등 유럽의 대러 대응을 이끌고 있다. 크룩스 대사는 “유엔 차원에서는 이 같은 전쟁의 반복을 막기 어렵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가치에 기반한 국제기구 개편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80일을 넘겼다.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우려가 크다. 
“사실 이번 침략이 러시아 도발의 시작점이 아니다. 러시아가 2008년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그리고 2018년 영국 솔즈베리 거리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린 이미 알고 있다(※전직 러시아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영국 솔즈베리 쇼핑몰에서 딸 율리아와 함께 독극물인 노비촉에 중독돼 의식불명인 채로 발견된 사건). 이미 러시아의 부당 행위를 경험한 영국 국민들은 러시아의 정당성 없는 침공, 반인도적 행위에 분노해 제재로 인한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라면 러시아의 일련의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푸틴의 실패를 위해 연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러시아와 같은 침략 행위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겨야 한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東進)’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는데.
“한마디로 ‘난센스’다. 주권 국가는 자국 영토 방위를 위해 동맹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러시아는 어떤 국가의 결정에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 먼저 러시아에 묻고 싶은 게 있다. 왜 러시아 주변국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서 나토에 가입하고 싶어하는가다. 이같은 움직임의 원인 제공자는 나토가 아닌 러시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후 사태를 지켜본 핀란드가 중립국 노선을 버리고 나토행을 택한 게 대표적이다.”(※지난 15일 핀란드가 74년 만에 중립국 지위 포기를 공식화하고 나토 가입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스웨덴도 16일 이 같은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콜린 크룩스 영국 대사가 2일 오후 서울 중구 영국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두 차례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유럽에서 또다시 침략 전쟁이라는 비극이 벌어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무너뜨리려 했겠지만 오히려 이번 침공을 통해 자유주의 진영의 힘을 확인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하고, 굉장한 회복 탄력성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같은 일을 예방하기 위해선 유엔이나 유럽연합(EU)의 틀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한 연대를 구축하는, 강력한 다자 협력 기구가 요구된다. 최근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이 ‘자유주의 연대(Network of Liberty)’를 제안한 바 있는데 이와 같은 국제기구 개편 논의가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와 미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도 이 기구 안에서 더 긴밀하게 협력했으면 한다. ”  
 
최근 영국은 한국이 포함된 인도·태평양 지역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 영국은 브렉시트(EU 탈퇴) 이후, 유럽 대륙이 아닌 전 지구적 관점에서 영국(글로벌 브리튼)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영국의 안보·경제 협력체로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가 인도·태평양이다. 영국은 한국·일본·호주·중국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특히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협의체)를 출범해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안보 분야에서는 이익보다 가치가 앞서기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여러 나라와 가치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하려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가치에 대한 공유가 가능하다면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어떤 나라와도 관계를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취임 전인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력직인수위원회에서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내정자를 접견하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한국과의 협력 강화 방안은.
“한국은 영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다. 윤석열 새 정부에 이미 양국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제안했고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기존 우호관계를 더 폭넓고 더 구체적으로, 더 긴밀하게 다져나가자는 게 기본 취지다. 특히 국방·경제·기후변화·재생에너지 분야에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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