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도 아닌데 8수...금융사보다 더 들어가기 힘든 연대 동아리

중앙일보

입력 2022.04.08 05:00

수정 2022.04.09 16:52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동아리 양극화]②취업보다 더 힘든 인기 학회 가입 

 
금융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2016년 연세대에 입학한 A씨는 2학년 2학기부터 뜻밖의 시련에 맞닥뜨렸다. 교내 인기 동아리 금융학회에 지원했는데 낙방한 것이다. 졸업 직전 학기까지 8차례 지원했으나 내리 떨어졌다. 경쟁률도 높았지만, 스펙과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면접들을 뚫지 못했다. 3학년 2학기에는 학회 지원을 하지 않고 ‘학회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50만 원짜리 멘토링과 강의를 겸한 외부 프로그램을 수강했지만, 다음 학기에 다시 떨어졌다.

 
결국 학회에 들어가지 못한 그는 다행히도 지망하던 금융회사에 입사했다. 학회를 준비하며 만든 ‘오답 노트’가 필살기가 됐다고 한다. 원하던 금융회사보다 대학 동아리 들어가기가 더 어려웠던 셈이다.  
 

PT는 기본…영어면접, fit 면접, 테크니컬 면접도

서울 시내 한 대학 게시판에 동아리·학회·기업 등의 홍보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최서인 기자

 
고려대 김모(20)씨는 전략 학회 면접을 앞두고 친구와 스터디를 꾸렸다. 그는 “동아리 면접과 달리 난이도가 있어 준비할 것, 알아갈 것이 많아 컨설팅 케이스 서적 등으로 공부하고 문답 연습을 하며 공을 들였다”고 했다. 1차 서류 심사, 2차 그룹 케이스 면접, 3차 자소서 기반 및 매출 추정 면접을 통과한 뒤 학회에 합격했다. 이 학회의 가입 경쟁률은 통상 5~6대 1이라고 한다.
 
최근 대학 동아리의 자리를 대체하는 게 학회다. 인기 학회의 입부 절차는 웬만한 기업 입사 못지않다. 부원 선발 절차가 2~4회에 이르는 것은 보통이고, PT 면접이나 영어 면접, 토론 면접 등이 이뤄진다. 직무에 대한 적합성을 판단하는 ‘핏(fit) 면접’, 전공 지식을 평가하는 ‘테크니컬 면접’을 하는 곳도 있다.


3월 3일 오후 영남대학교 경산캠퍼스 앞 횡단보도가 오가는 학생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연세대의 한 경영학회에서 활동한 신모(25)씨는 “마지막 면접은 4명이 한 팀으로 과제를 수행해 1시간 안에 발표하는 PT 면접 형식”이라고 했다. 1시간에 걸친 토론 과정을 심사위원들이 지켜보고 참여도나 논리성 등을 평가한다. 신씨는 “준비할 시간을 더 적게 주거나 영어로 면접을 보는 곳들도 있다”고 했다.  

 

동아리 지고, 학회는 떴다   

경험한 동아리나 학회 분야.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동아리 활동이 위축됐지만, 학회는 성황이다. 가입 절차가 까다롭지만, 적극적인 홍보가 없어도 신청서가 몰린다. 한양대 경제학회 HEA 회장 이준호(26)씨는 “교내 유일한 경제학회이다 보니 기업 자소서 준비에서 나름 큰 메리트다.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지원자를 뽑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양대 프로그래밍 동아리 FORIF 민경환(21) 회장은 “코로나19 동안 중앙동아리로 승격되었다. 학문적 특성 때문에 지원이 늘어서 동아리가 살아난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리와 학회는 대학 행정상의 차이는 없는 자율적인 모임이다. 대체로 학회가 학문과 실용 중심이라면 동아리는 취미와 친목의 비중이 크다. 소위 ‘메이저’ 학회는 경영전략, 법학, 마케팅, 금융 등 각자의 진로에 스펙으로서 의미가 있는 모임이다. 서강대 박모(21)씨는 “학회와 동아리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동아리는 친목이 우선이라면 학회는 공부해서 각자 필요한 걸 얻어가는 게 더 중요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전략학회에서 활동한 B씨는 “특정 분야를 경험하면서 서로 친해진다는 점에서는 학회도 동아리와 비슷하지만, 학회는 사실상 설립 목적 자체가 취업이라 일단 가입하면 의무 활동 기간이 있는 등 규율이 있다”고 말했다. 동아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심사와 친목을 즐기는 ‘과정 지향’ 이라면 학회는 ‘목적 지향’이라는 게 학생들의 설명이다.
 

지난 3월 22일 오전 서울 시내 모 대학의 열람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최서인 기자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유명 학회의 서류나 면접 단계가 끝날 때마다 면접 후기를 공유하며 초조하게 당락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게시물이 올라온다. B씨에 따르면 아예 학회 가입을 위해 인턴 경력을 준비해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코로나 학번 “차라리 스펙이나 쌓자”

지난 3월 29일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다. 최서인 기자

 
코로나19는 학회를 포함한 동아리 양극화를 가속화했다. 고려대 전략학회의 김씨는 “코로나19로 학내 활동이 멈춘 동안 차라리 실무적인 학회에 들어와서 자기계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법조인을 꿈꾸는 이화여대 22학번 우모(19)씨는 로스쿨 진학을 염두에 두고 법학회에 지원했다. 우씨는 “인문계열 동기들 10명 중 7명은 로스쿨·행정고시·CPA 등으로 진로를 정해 미리 준비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양대 중앙동아리 분과별 비대면성·실용성 평균.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한양대의 동아리를 6개 분야(체육·학술·교양·문화예술·공연예술·종교)로 나눠 2019년 1학기와 2022년 1학기의 신입부원 수를 비교했더니 양극화 현장이 나타났다. 교양 분야(여행, 봉사, 바둑 등)의 신입부원 수는 코로나19를 거치며 44.8% 감소했지만, 경영·경제 연구와 토론 등 학술 분야의 신입부원 수는 31.4% 증가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소모임이 활발하고 끈끈했던 과거와 달리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현 대학생들은 실용적인 모임을 주로 한다. 크게 세 부류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취업 관련, 둘째는 자산 증가, 셋째는 일종의 네트워크 관리다”라고 말했다.
 

“알럼나이 카톡방에서 멘토링”

교내 활동 모임에 참여한 이유.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취업플랫폼 사람인과 중앙일보가 20~30대 1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내 모임에 참여한 이들 5명 중 2명(39.4%)은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답변했다. 가장 많은 답변은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48.6%)였다.
 
인기 학회는 기업과 연계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스펙’이 되는 실무 활동을 한다. 연세대 경영학회에서 활동한 김모(23)씨는 “대외활동·학회·공모전을 ‘취업 3박자’라고 한다. 실무 경험을 할 수 있어 구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알럼나이(학회·동아리 동문)들끼리 있는 카톡방이 생기는데 인터넷 서치로는 알 수 없는 구직 정보들이나 멘토링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場) 나빠져도 주식 동아리 성황

경희대학교 주식경제동아리 ABS 회원들이 메타버스 공간(게더타운)에서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ABS 제공]

 
주식투자 학회나 동아리는 대학가의 ‘블루칩’이 된 지 오래다. 주식경제연합동아리 위닝펀드 회장 이혜규(21)씨는 “올해 지원자 수가 코로나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주식을 잘못 샀다가 ‘물려서’ 공부를 결심하고 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경희대 주식경제동아리 ABS 회장 남윤호(23)씨는 “장 상황이 작년보다 안 좋아 동아리에 관심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면접 경쟁률이 3:1로 작년과 비슷했다”고 했다.
 
2014년 대학생 소모임으로 출발한 대학생연합투자동아리 UFIC은 2020년 회원이 늘면서 동아리로 자리 잡았다. 회장 심명보(24)씨는 “특히 장 상황이 좋았던 지난해 신입 부원이 올해의 3배 수준으로 폭발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