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권력 지지율 팽팽, 지선 승리 위해 사사건건 ‘기싸움’

중앙일보

입력 2022.04.0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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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일 오전 국회에서 각 당의 내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측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의 신·구 권력 갈등이 풀릴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선 19일 만인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가까스로 만찬 회동을 한 뒤에도 양측 관계자들은 연일 공개 석상에서 서로 거친 말을 주고받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부터 인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신·구 권력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①전례 없는 지지율=무엇보다 퇴임을 앞둔 현직 대통령의 역대 최고 지지율과 대통령 당선인의 최저 지지율이란 이례적인 지지율 상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분석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31일 조사해 1일 발표한 문 대통령 직무 수행 조사에서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2%에 달했다. 집권 5년차 4분기 평균 지지율도 42%로 1987년 직선제로 전환된 뒤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역대 최고치다. 문 대통령 다음으로 지지율이 높았던 전직 대통령은 27%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윤 당선인의 직무 수행 기대는 ‘잘할 것’이란 응답이 55%에 불과했다. 역대 대선 이후 비슷한 시기의 조사에서 이명박(84%)·박근혜(78%) 전 대통령이나 문 대통령(87%)이 기록한 수치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윤 당선인의 국정 기대치보다 높은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연구위원은 “대선이 끝나면 지지층이나 여론 지형이 재구성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아직도 지난 대선 때의 여론 구도가 변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측의 팽팽한 지지율 상황이 원만하고 매끄러운 정권 이양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②초박빙 대선 직후 지방선거=정치권 인사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신·구 권력 다툼의 또 다른 요인은 대선 뒤에 곧바로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는 정치 환경적 변수다. 대선이 끝난 뒤엔 ‘통치와 정치’의 시간이 와야 하는데 대선과 지방선거의 간격이 80여 일밖에 안 되다 보니 ‘선거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대선이 0.73%포인트 차이의 박빙 승부였던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구권력은 0.73%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은 패배의 결과를 마음속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것 같고, 신권력은 0.73%포인트가 아니라 7.3%포인트 차이로 이긴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며 “대선의 연장전을 치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지지층 붙들기에 여념이 없는 게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퇴임을 앞둔 권력은 ‘새 정부가 점령군처럼 굴어 견제가 필요하다’는 프레임을 원하고, 취임을 앞둔 권력은 ‘대선 패배 세력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원하고 있는 셈이다. 배 위원도 “양측 모두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열을 단단히 정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양쪽 모두 지방선거를 필히 이겨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민의힘이 이기면 윤 당선인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얻는 것이고, 더불어민주당이 이기면 정권 교체 뒤에도 정국 주도권을 계속 쥘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양쪽이 서로 정치공학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③친노와 MB계의 앙금=구권력의 주축이 친노무현계 뿌리고, 신권력의 주축이 과거 이명박(MB)계 인사들이란 점에서 일종의 ‘앙금’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 논란이 커지고 있는 데 대해서도 민주당에서는 ‘과거’를 소환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예전 행태와 지금의 모습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며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와 관련해서도 보수 시민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언론에서 그걸 받아주고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서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면서 의혹 부풀리기를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런 가운데 양측은 1일에도 대우조선해양 대표 선임을 둘러싸고 공방을 이어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문재인 정부는 민간기업 인사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는데도 인수위는 마치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몰염치’라는 극단적 언어까지 썼다”며 “어떻게 의심만으로 ‘알박기’ ‘비상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청와대 회동 후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인수인계를 위해 노력 중인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모욕을 당한 느낌이다. (인수위 측이) 정중하게 사과하고 결자해지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인수위는 상식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뿐인데 청와대가 감정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청와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인수위가 눈독을 들인다’고 한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신·구 권력이 계속 부딪치면 새 정부 출범 뒤에도 갈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고, 그럴 경우 국정을 책임지는 새 여권이든 야당이 되는 민주당이든 힘들어지는 건 마찬가지”라며 “정치권의 힘겨루기에 결국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