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1〉거장 임권택
우여곡절 끝에 영진공 사장에 취임하자마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다다’가 캐나다 몬트리올영화제 경쟁부문에 선정되었다는 전문이 날아왔다. 당시 몬트리올영화제는 세계 8대 영화제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었다. 배경을 확인해 보니 세르즈 로지크 집행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해 영진공 시사실에서 임 감독의 ‘아다다’를 보고 간 후 경쟁부문에 올렸다고 했다. 잘만 하면 수상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대표단을 구성, 현지에서 ‘한국의 밤’ 행사를 개최하기로 하고 8월 26일 먼저 몬트리올로 날아갔다.
몬트리올 동반 참석 뒤 가깝게 지내
그런데 시작부터 꼬였다. 대표단 구성 자체가 어려웠다. 요즘이야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한국 영화인들이 누비고 다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사정은 사뭇 달랐다. 먼저 임 감독을 설득해야 했다. 지금은 임 감독과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절친’으로 지내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둘은 낯선 사이였다. ‘아다다’의 주연 배우 신혜수도 KBS 드라마 ‘지리산’ 촬영을 하고 있어서 몬트리올영화제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임 감독과 신혜수에게 그리고 KBS에 영화제 참가 협조를 신신당부했다.
내가 2010년 펴낸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 책자에 당시를 회고한 임 감독의 ‘축사’의 한 대목. “김동호 사장이 진흥공사 직원들에게 감독과 주연배우를 꼭 데려와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 놓고 떠났다는 소리를 전해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웃었다. 역대 영진공 사장 중에 해외영화제에 참가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데다가 그들이 영화제에 온들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마 영화제를 핑계 삼아 관광이나 하자는 속셈이겠지 하는 불쾌한 생각도 들기도 했다.”
나는 몬트리올에 도착해 박수길 주캐나다 대사에게 부탁해서 ‘한국의 밤’ 행사에 부부 동반해서 참석한 후 다음 날 아침 집행위원장과 조찬을 같이해 줄 것을 부탁했다. 문공부에는 천호선 주캐나다 공보관을 현지에 파견해 줄 것도 요청했다. 임 감독과 신혜수가 도착하자 내 대학 동기인 나원찬 주몬트리올 총영사는 공관에서 환영만찬을 베풀어 주었고 영사 1명과 차량을 전용으로 배치해 주었다.
심사위원과 함께 보는 공식 시사회 장소인 메종뇌브극장은 1400석의 대극장이었다. ‘아다다’가 상영될 아침 시간에는 관객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몬트리올에 있는 한국 성당의 신부와 한인교회 목사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교민들이 함께 ‘아다다’를 보도록 공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9월 1일 아침 11시에 열린 공식 시사회는 초만원을 이루었고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그날 저녁 국악공연과 함께 열린 ‘한국의 밤’ 행사도 성공리에 개최됐다. 9월 4일 시상식에서 배우 신혜수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영화의 거장 임 감독은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그는 1962년에 개봉한 첫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시작으로 2015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된 ‘화장’까지 모두 102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편영화를 만든 감독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된다. 제작 편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영화들이 한국영화를 세계로 진출시키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지금 한국영화는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19년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2020년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과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배우 윤여정은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면서 배우 오영수가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시상하는 골든글로브상 남우조연상을 탔다. 이처럼 우리 영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그 바탕에는 임 감독의 공헌이 절대적이다.
한국영화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초로 수상한 영화가 바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다. 1987년 배우 강수연이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임 감독은 가장 권위 있는 칸영화제에서도 길을 텄다. 경쟁영화가 상영되는 칸의 르미에르극장에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와 쉴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프레시를 받으면서 레드카펫을 밟고 들어가는 것은 전 세계영화인의 로망이다. 그 로망을 실현시켜 준 첫 한국영화가 임 감독의 ‘춘향뎐’이다. 칸 역사 53년 만에 우리 영화 ‘춘향뎐’이 2000년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리고 2년 후 임 감독은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한국영화 100년사에 기록될 쾌거였다.
1981년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가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한국영화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임 감독은 2005년 베를린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받게 된다. 황금곰상과 명예 황금곰상은 그 격과 차원이 다르다. 영화제에서 대상은 작품성이 뛰어난 한 편의 영화로 받게 되지만 명예대상은 평생을 쌓아 온 공로로 받는 상이기 때문에 대상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영예로운 상이다.
이를 계기로 2012년 베니스영화제 ‘피에타’(김기덕)가 황금사자상을, 2019년 칸영화제에서 ‘기생충’(봉준호)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함으로서 한국영화의 위상은 전 세계에 떨치게 된다. 이처럼 임권택 감독은 한국영화를 전 세계에 알린 첨병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달빛 길어 올리기’에서 단역 맡기도
나는 몬트리올영화제에 처음으로 임 감독과 동반 참석하면서 그와 가까워졌고 지금까지도 그와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그 이후 나는 임 감독이 연출한 ‘장군의 아들’ ‘서편제’ ‘창’ ‘축제’ ‘춘향뎐’ ‘하류인생’ ‘취하선’ ‘천년학’ ‘화장’ 등 거의 모든 영화 촬영 현장에 원근을 가리지 않고 가 보았고 ‘달빛 길어 올리기’에서는 직접 배우로 단역을 맡아 출연하는 호사도 누렸다. 특히 임 감독이 초대받은 해외영화제나 수상식, 회고전에는 빠짐없이 동행했다.
나는 34년간 임권택 감독과 함께하면서 그의 엄격한 성품과 철저한 장인정신에 늘 감탄하곤 한다. 함께 술을 많이 마셔도 주정을 하거나 필요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스태프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만큼 엄격하다. ‘서편제’ ‘취하선’ ‘달빛 길어 올리기’에서 보듯 임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한국의 전통과 미를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가 세계적인 거장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다.
김동호
1956년 경기고 졸업
1961년 서울대 법대 졸업, 공보부 입부
1980~88년 문화공보부 기획관리실장
1988~92년 영화진흥공사 사장
1992년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
1992~93년 문화부 차관
1996~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창설 및 집행위원장
2010~16년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2014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받음
2016~17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이사장
2019년 8월~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이사장
영화제 심사위원장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즈(2015), 로테르담(1997), 도쿄필맥스(2006), 베오그라드(2008), 타르코브스키(2010), 오키나와(2009, 2010), 타이베이(2010), 말레이시아(2017), 히로시마(2017), 한국 청룡영화상(2004~2011)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즈(2008, 2016),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부문(2010), 후쿠오카(1997), 싱가포르(1997), 하와이(1997), 인도(1998), 부에노스아이레스(1999), 시애틀(2002), 라스팔마스(2004), 예레반(2008), 사라예보(2008), 블라티슬라바(2010), 몬트리올(2011), 모스크바(2012), 유라시아(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