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오디세이] 80년대 ‘돌주먹’ 박종팔 관장
KO 펀치는 힘 아닌 타이밍에서 나와
- 관장님의 돌주먹은 어디서 나옵니까?
- “사람들은 권투를 힘으로 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신인 땐 그렇게 알았는데 힘으로 때려도 상대가 안 떨어져요. 그래서 연구를 많이 했죠. 상대를 눕히려면 들어오는 걸 받아쳐야 해요. 그래야 내가 힘도 안 들고. 그게 타이밍인데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권투인이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순간적으로 내는 펀치가 반 박자 빨라야 한다는 거죠.”
- 주무기인 몸통 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 “권투 펀치는 잽·스트레이트·어퍼·훅 네 가지 뿐입니다. 각각의 펀치에 대해 열 가지 이상의 폼을 자기 걸로 만들어 놓고 변형을 해야 합니다. 상대 폼만 딱 보면 턱이 약한지 복부가 약한지를 알 수 있어요. 턱이 약하다면 복부를 좀 때려놔야 가드가 내려가서 안면에 틈이 생깁니다. 복부가 약한 상대라면 안면을 많이 공격하면 복부가 비게 되죠.”
- 다섯 번 졌는데 네 번을 KO패 했어요. 맷집이 약했나요?
- “진 게임은 다 중량 실패로 스스로 무너졌더라고요. 상대를 아래로 보고 ‘에이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고 중량 조절에 실패하면서 무너진 거죠. 저는 보통 12kg 감량하고 경기에 나섰어요. 한국 타이틀매치는 한 달 여유가 있고, 동양 타이틀은 두 달, 세계 타이틀은 3개월 준비할 수 있거든요. 젊었을 때 옆으로 좀 새다 보면 날짜가 금방 와 버려요.”
- KO로 이긴 경기에서도 다운 당한 적이 많았죠?
-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중 감량을 잘 했다면 맞고 떨어져도(다운이 돼도) 바로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무리하게 체중을 뺐다든가 하면 회복이 안 돼요. 매에 장사는 없어요. 맞으면 떨어지게 돼 있고, 반대로 상대를 잘 때리면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KO 시킬 수 있어요.”
- 당대 중량급 최강 마빈 헤글러(미국)와 붙었다면?
- “내가 WBA 슈퍼미들급 1위였을 때 헤글러의 다음 상대로 뉴욕까지 초청을 받아서 갔어요. 그런데 동양의 무명 복서여서 흥행이 안 될까 봐 대전을 취소한 거죠. 헤글러가 왼손잡이인데 내가 왼손잡이랑 하면 잘 해요. 한번 해볼 만한 게임이었을 텐데 그게 가장 아쉽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센 상대한테는 죽기 살기로 붙는 근성이 있거든요.”
- 백인철과의 프로 마지막 경기는 처절한 난타전 끝에 KO패 했는데요.
- “결과적으로 그게 마지막 시합이 됐어요. 인철이가 잘 나갔던 선수지만 내가 보기엔 한수 아래여서 소홀하게 생각했지요. 한번 맞고 떨어져 봐야 정신을 차리는 게 사람이죠(웃음). 사실 제 나이가 매스컴에 나오는 것보다 좀 많아요. 권투선수로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서 미련 없이 글러브를 벗었죠.”
헤글러와 붙었으면 멋진 경기 했을 것
- 엄청난 인기에다 돈도 많이 버셨죠?
- “나는 동양 타이틀매치 할 때부터 개런티가 다른 선수보다 높았어요. 거기다 회사에서 봉급 외에 훈련비를 별도로 주죠. 동양 타이틀 10차 방어전 이후부터는 시합이 잡히면 땅 먼저 계약하고 올 정도였어요. 처음 산 게 충남 당진의 땅 1만 평인데 당시 3000만원인가 줬을 겁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면 얼마일까요? 말하면 뭐해. 속 터져불지. 하하.”
- 어쩌다 그 많던 돈이 도망가 버렸을까요?
- “한번 잘못되다 보니까 브레이크가 안 듣습디다. 어떤 선배한테 1억 투자해서 안 되면 그만둬야 하는데 ‘3억만 더 투자해라. 6개월 안에 5억 만들어 줄게’ 그러면 그 말 홀라당 믿고 땅 팔아서 날려버리는 식이었죠. 운동 하면서 내 주위에는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본 사람도 하다못해 음료수라도 사 주지, 밥 사주고 봉투 주지. 사회가 나를 위해서 있는 거 같았죠. 근데 내 돈 갖고 간 사람치고 잘 되는 놈 하나도 못 봤어요.”
- 그러다가 부인을 만나셨네요.
- “인생 역전이죠. 지인이 선 보라 했을 때 ‘죽을 생각만 하고 있는데 선을 봐서 뭐해’ 싶다가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만나나 보자’ 해서 만났죠. 근데 희한하게 엄마 같은 포근함이 들고 ‘저 사람이면 날 붙들어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박 관장은 군부대나 학교 등에서 특강 요청을 자주 받는다. 주제는 ‘인생에 한 방은 없다’.
“권투에는 역전 KO승, 즉 한 방이 있지만 인생에는 한 방이 없어요. 인생은 3라운드라고 생각해요. 난 1라운드에서 부와 명예를 다 가졌고, 2라운드에서 탈탈 털렸어요. 그래도 3라운드가 있잖아요. 나쁜 생각 않고 남 등치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꼭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3라운드 승자가 진짜 인생 승자지요. 허허허.”
“벨트 못 따면 죽어서 돌아오겠다” 절친 김득구 말이 씨가 돼
박 관장은 “득구는 어떡하든지 권투로 일어서 보겠다는 집념이 대단했어요. 미쳤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쇼맨십과 리더십이 강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팔방미인이었죠”라고 회상했다.
김득구는 “벨트 못 따면 죽어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도전자와 챔피언 중 하나는 죽을 거라며 성냥갑 관을 만들어 미국에도 갖고 갔다고 한다. 박 관장은 “득구에게 ‘벨트 못 따면 죽어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왜 지켰냐’고 묻고 싶어요.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꼭 그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힘들어 죽겠다’는 말보다 ‘괜찮아.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말을 많이 하세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