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 볼 시간도 없다" 3시간짜리 '더 배트맨'...요즘 영화 왜 길까

중앙일보

입력 2022.03.06 14:03

수정 2022.03.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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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해리 포터' 스타 로버트 패틴슨이 새로운 배트맨 배우로 나선 영화 '더 배트맨'이 3월 1일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탄생 83주년을 맞아 다시 젊어진 배트맨이 극장가를 점령했다.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패틴슨(36)이 새로 박쥐 망토를 물려받은 영화 ‘더 배트맨’(감독 맷 리브스)이 1일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해 닷새 만에 41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영화관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더 배트맨’은 공휴일인 3·1절 오전 실시간 예매율이 70%대로 치솟으며 사전 예매 티켓만 11만장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상황임을 고려하면 DC코믹스 터줏대감 배트맨의 자존심을 구기진 않은 세대교체다. 
그러나 ‘더 배트맨’이 경쟁사 마블 코믹스 막내 스파이더맨의 최신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올겨울 거둔 팬데믹 이후 최고 흥행성적(752만 관객)을 따라잡을지는 미지수다. 화려한 슈퍼 히어로 액션보단 세태 풍자적인 탐정 느와르 분위기가 강한 데에 호불호가 나뉘고 있어서다.  
 

인간적인 배트맨 VS 루즈하다  

‘더 배트맨’은 애초부터 배트맨‧슈퍼맨‧원더우먼‧아쿠아맨 등 DC 슈퍼 히어로들이 뭉친 ‘저스티스 리그’ 세계관(DCEU)과 별개로 제작한 작품이다. 배트맨은 1939년 DC 코믹스에 처음 등장한 이래 개성 강한 감독들의 재해석이 빛난 캐릭터.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런에 이어 이번엔 ‘혹성탈출’ ‘클로버필드’ 시리즈의 맷 리브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비현실적인 재난 속에 인간됨의 본질을 그려온 그가 전작들의 주제관을 배트맨 세계관에 펼쳐냈다.  
극 중 가상 도시 고담 시엔 1960년대 조디악 킬러 같은 실제 연쇄 살인마, 부패 정치권 및 경찰, 마피아 범죄, 폭동과 약탈 등 미국의 어두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불어넣었다. 배트맨은 억만장자 상속자 ‘브루스 웨인’이란 신분을 감추고 자경단 활동 2년 차에 접어든 초짜로 그렸다. 어릴 적 괴한에 부모를 잃은 그가 분노를 주체 못 하는 거친 모습, 불완전한 수트‧무기 등 시행착오를 부각했다. 
기존 배트맨과 차별화엔 성공했지만, 액션의 쾌감은 부족하다는 게 주된 평가다. 메가박스 예매앱 실관람평에도 “인간적인 배트맨” “분위기와 사운드로 압도하는 웅장함” “현실적이고 새롭다” 같은 호평과 “늘어진다” “'다크 나이트(크리스토퍼 놀런 감독판 ‘배트맨’)'가 명작이었다” 등 아쉬운 반응이 엇갈린다.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언론·평단 신선도는 5일 기준 85%. ‘배트맨’ 극장판 실사영화론 조커 역의 히스 레저가 코믹스 캐릭터 최초 아카데미 연기상(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다크 나이트’(2008)의 94%, 그 후속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의 87%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다만, 긍정적인 리뷰에도 “너무 길다”(리틀 화이트 라이즈)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1일 한국서 최초 개봉 '더 배트맨'
2년차 배트맨의 느와르풍 176분
"인간적·웅장"vs"늘어진다" 엇갈려
할리우드 대작 길어지는 이유는…

3시간짜리 배트맨, 블록버스터 길어진 이유…

배우 고(故) 히스 레저가 악당 조커(사진)를 연기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의 상영시간 176분. '더 배트맨’은 영화 공개 전부터 최장 ‘배트맨’ 영화로 화제에 올랐다. 기존에 가장 길었던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164분을 제쳤다. ‘더 배트맨’은 역대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블록버스터 중에서도 상영시간 2위다. 무려 181분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과 단 5분 차이다. 앞서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도 2시간이 훌쩍 넘는 148분이었다.  
할리우드 현지에선 긴 영화가 최근 대작들의 추세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왜 요즘 영화들은 이렇게 길까?’란 제목의 기사에서 배트맨‧스파이더맨 신작과 더불어 지난해 개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듄’(155분), 마동석의 마블 히어로 진출작 ‘이터널스’(155분) 등을 사례로 들었다.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은퇴작인 첩보 액션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장장 163분 상영시간 탓에 “소변 볼 시간도 없다(No Time to Pee)”(인디펜던트)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거장들도 가세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난해 152분짜리 중세 사극 액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 이어, 올해 구찌 가문 실화를 그린 158분짜리 ‘하우스 오브 구찌’를 선보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동명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156분에 달했다.  
 

OTT·시리즈물 급부상, 스펙터클 경쟁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팬데믹 후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1일 서울의 한 영화관. [연합뉴스]

‘버라이어티’는 이런 현상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십계’ 등 4시간 가까운 대작들이 극장가에 내걸렸던 시기와 비교했다. 집집마다 보급된 TV와 경쟁하기 위해 “소파를 떠나 영화관에서 힘들게 번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몰입형 스토리텔링”을 앞다퉈 내놓던 시기다. 이런 전략이 온라인 스트리밍(OTT)이 급부상한 최근 부활했다는 의미다. 또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스타워즈’ 시리즈 등 컴퓨터그래픽(CG) 및 시각효과에 대자본을 투입한 SF‧판타지 블록버스터의 경우 스펙터클을 과시하기 위해 긴 상영시간을 채택해왔는데 최근엔 할리우드 텐트폴(대작) 영화가 이런 경향을 이어가며 관객들의 체감 상영시간이 길어졌단 분석도 나온다. 
‘더 배트맨’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젖힌 리브스 감독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 세계는 엄청나게 방대하게 느껴졌다”고 밝힌 터다. 이처럼 속편을 염두에 두고 세계관을 쌓아가는 시리즈물 제작이 활발해진 것도 상영시간 확장 요인으로 꼽힌다. 
시간 제약이 없는 OTT 전용 영화들도 평균 상영시간을 밀어올렸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은 상영시간이 209분, HBO맥스가 출시한 감독판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242분에 달한다.
 

영화가 길어야 완성도 돋보인다?

영화가 길어야 작품성 있게 받아들여진다는 할리우드의 오랜 믿음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 매체 ‘비지니스인사이더’는 영화 평론가 피터 트래비스를 인용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상영시간 2시간 미만 영화는 오스카 시즌에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할 정도”라고 전했다. 흥행 성공에 더해 아카데미 역대 최다 11부문을 석권한 ‘타이타닉’의 상영시간은 무려 194분이었다. 오는 27일(미국 현지시각) 열리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 10편 중에서도 ‘벨파스트’(98분) ‘코다’(111분)를 제외하곤 모두 2시간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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