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풋풋한 첫사랑 ‘미국판 응칠’…“얘기 푸는 데 40년 걸렸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6면

첫사랑의 설렘을 담은 영화 ‘리코리쉬 피자’로 연기에 데뷔한 뮤지션 알라나 하임(왼쪽)과 신예 쿠퍼 호프만. 호프만은 배우 고(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첫사랑의 설렘을 담은 영화 ‘리코리쉬 피자’로 연기에 데뷔한 뮤지션 알라나 하임(왼쪽)과 신예 쿠퍼 호프만. 호프만은 배우 고(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인종 갈등(‘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종교 분쟁(‘벨파스트’), 우주 전쟁(‘듄’)까지…. 유독 묵직한 주제의 영화들이 집결한 올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부문 후보 명단에서 풋내기들의 첫사랑을 그린 ‘리코리쉬 피자’(16일 개봉)는 엉뚱한 선정작처럼 보일지 모른다.

1973년 할리우드 인근의 소도시 샌 페르난도 밸리의 중학생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가 학교 행사를 도우러 온 20대 누나 알라나(알라나 하임)에게 반해 첫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할리우드의 영화 기술직들과 왕년의 스타, 지망생이 뒤섞여 살던 동네 분위기에 당대 유행가요, 핀볼장, 석유파동 등 복고풍 추억을 경쾌하게 버무렸다. ‘할리우드판 응답하라 1973’라 해도 좋을 정도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52) 감독 작품이란 것도 놀랍다. 그는 미국 포르노 사업을 조명한 출세작 ‘부기 나이트’(1997)부터 베를린 황금곰상을 차지한 ‘매그놀리아’(1999), 베니스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은 ‘마스터’(2012) 등 음울한 시대상에 대한 통찰을 파괴적인 인간관계와 완벽한 미쟝센에 새겨왔다. 그런 그가 1970년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샌 페르난도 밸리로 돌아가 가슴설렌 청춘영화를 펼치다니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이 영화로 다음달 27일(미국 현지시간)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각본상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그를 22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18살 때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40년이 걸려서야 자신감을 갖고 흥분된 마음으로 그때를 돌아볼 수 있게 됐어요.”

역대 연출작 중 가장 ‘사랑스럽다’는 평가인데.
“동의한다. 나이 들며 내가 부드러워졌을 수도 있지만, 알라나와 개리의 젊음 그 자체로 전염성이 강하다. 배우들의 연기에 배어난 활기, 즐거움에 관객이 반응하는 것 같다.”
전작 ‘팬텀 스레드’와 분위기가 딴판이다.
“영화감독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웃음).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절대 예측할 수 없다. ‘팬텀 스레드’는 날카롭고 폐소공포증을 겪는 듯한 영화였고 이번에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보고 싶었다.”

이번 영화는 그가 살면서 겪은 여러 순간이 합쳐지며 출발했다. 극 중 한물간 아역 배우 출신의 주인공 개리는 1970년생인 앤더슨 감독에겐 형뻘이다. “실제 유년기 추억들이 자연스레 토대가 됐어요. 저한테는 형들이 많았고 어렸을 땐 늘 그들의 모험을 지켜보는 입장이었거든요. 이젠 다들 60~70대가 됐죠.”

여기에 20년 전 그가 동네 중학교에서 한 소년이 연상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것을 인상 깊게 본 일과, 절친한 할리우드 제작자 개리 고츠먼이 실제 10대 시절 아역 배우로 활동하며 직접 물침대 판매, 핀볼장 사업을 벌인 일화를 버무려냈다.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 촬영을 마쳤다. 앤더슨 감독은 “운이 좋았다”면서 “팬데믹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즐겁고 다정한 영화여서 다행”이라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