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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간 130여 권 저술…베스트셀러로 본 이어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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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장관이 2019년 1월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중앙일보와 신년 인터뷰를 하는 모습. 최승식 기자

이어령 전 장관이 2019년 1월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중앙일보와 신년 인터뷰를 하는 모습. 최승식 기자

26일 작고한 이어령 선생은 독보적인 다작 저술가다. 60여 년 동안 130여 권의 책을 썼다.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대중적인 글쓰기로 풀어냈다. 선생의 대표작 중 네 권의 베스트셀러를 다시 들여다본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1963년 갓 서른인 선생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선생이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묶어 현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다. 이후 문학사상사로 출판사를 옮겨 지금까지 한 차례도 절판되지 않고 250만부 넘게 팔렸다.
 당초 신문사에서 제시한 제목은 ‘한국 문화의 풍토’였다고 한다. 선생은 ‘풍’을 ‘바람’으로, ‘토’를 ‘흙’으로 바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란 여운 깊은 이름으로 내놨다. 문화부 장관 시절 일본식 한자어 ‘노견(路肩)을 순우리말 ‘갓길’로 바꾼, 조어의 귀재 선생다운 작명이었다.
책은 울음, 굶주림, 윷놀이, 돌담, 하얀 옷, ‘끼리끼리’ 등 우리네 일상과 풍습 속에서 한국 문화의 본질을 날카롭게 분석해 화제를 모았다. 열등의식과 좌절감 속에 빠진 한국인에게 ‘신명 나게 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을 일깨웠다는 평가도 받는다.
책은 초판 5000부가 첫날 다 팔리고, 발간 1년 동안의 판매 부수가 30만 부에 이르렀을 만큼 반향이 컸다. 선생은 이 책의 인세로 집과 자동차를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장석주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이 책은 컬럼비아대학교 등에서 동양학 연구 자료로 쓰였고, 일본 학계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켜 이 책을 읽은 후쿠오카 프로듀서에 의해 ‘봉선화’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대만에서도 『기사기풍(欺士欺風)』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다.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
‘축소’라는 단어를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내세운 책이다. 일본에서 1982년 1월 먼저 출간했고, 8개월 뒤 한국어판이 나왔다.
1981년 일본 외무성 국제교류기금의 초청으로 도쿄대 비교문화연구소에 가게된 선생은 연구 논문을 토대로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펴내며 일본 지식인 사회에 파란을 일으켰다. 출간 50일 만에 5만부 넘게 팔려 11판을 찍었고, 공공기관ㆍ기업ㆍ재단 등의 강연요청이 쇄도해 일본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
선생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일본의 문화ㆍ정치ㆍ산업ㆍ종교 등 각 분야에서 ‘축소지향’의 특징을 짚어냈다. 밥상을 줄여 만든 도시락, 손과 발을 생략한 아네사마인형,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형식인 하이쿠 등을 예로 들면서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축소지향’에서 ‘확대지향’으로 지향점을 바꿨을 때 세계 역사에 불행을 가져왔다는 점도 꼬집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우리 사회에 일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합리적ㆍ논리적 시각을 제공했다는 의미도 컸다. 선생은 1982년 책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일본을 논하는데 가장 편한 방법은 반일”이라고 했다. “반일이면 무사통과”였던 세태를 비판하면서, 선생은 용감하게 말문을 연다. “말을 뒤따라가면 언제나 뒤지고 발길에 차인다. 말과 경주할 때 이기는 방법은 그 고삐를 잡고 올라타는 한가지 뿐이다. 일본을 연구하는 것이 고삐를 잡는 길”이라면서다.

◇디지로그(2006)
선생은 시대를 선도하는 패러다임의 창조자이자 전도사였다. 2006년 중앙일보 연재 칼럼을 묶어낸 『디지로그』에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융합한 ‘디지로그’(Digilog)를 21세기 강국을 향한 지름길로 제시했다.
디지털 기술의 부작용과 단점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보완하는 이 따뜻한 신(新)문명 시대를 한국이 이끌 것이라고 예견했다. “정보기술(IT)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지만 디지털 강국은 한국이 먼저”라며 “한국인들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봤다. 한국의 IT 기술 인프라, 융통성 넘치는 사회적 분위기, 집중과 신바람의 국민성을 디지로그를 융성시킬 3박자로 꼽았다.
스스로 서재에 7대 컴퓨터를 연결해두고 세상의 지식을 탐험하며 몸소 디지로그 세상을 개척했던 얼리어댑터 노학자의 선견지명은 현실로 적중했다. ‘왜 지금 디지털인가’에 대한 치밀한 실태 조사와 탐구는 1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오랜 세월 무신론을 고집해온 선생은 2007년 일흔넷 나이에 갑작스레 기독교 세례를 받으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가 처음 신앙을 고백한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면 망령이 났다고들 한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기성의 모든 권위를 거부하며 냉철한 지성인의 신념을 강조해온 그가 종교를 갖게 됐다는 데 대한 비판에 솔직하게 응답한 이 책은 1년 만에 판매 부수 30만권을 넘겼다.
선생이 당시 기독교인이 되길 결심한 계기론 딸 이민아 목사가 꼽힌다. 미국에서 검사로 활동하다 개신교 목사가 된 딸에게 닥친 암과 실명 위기, 손자의 질병 등을 잇따라 겪은 후 세례를 받았다는 것. 『지성에서 영성으로』엔 딸의 실명 위기 속에 그가 “내 딸에게 빛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내 남은 생은 당신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기도를 올리고 7개월 만에 딸의 망막박리증세가 사라졌던 일화도 나온다. 그러나 책에서 그는 자신이 종교를 갖게 된 까닭이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 ‘메멘토 모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보다 넓게 짚는다. 책을 펴낼 당시 그는 “제가 처음 쓴 내면의 이야기다. 저의 약점, 슬픔을 고백한 일종의 일기장”이라 밝혔다. 딸 이 목사는 책이 나온 지 2년 뒤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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