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첫 독창회 여는 ‘라포엠’ 최성훈
록 샤우팅으로 극한의 고음을 내는 남성 싱어는 꽤 있지만, 정통 클래식 코스를 밟은 카운터테너가 고유의 발성을 그대로 지키면서 대중적 사랑까지 받은 경우는 전에 없었다. 최성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파리국립음악원,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 제네바 국립고등음악원을 거쳤고, 스위스 마리아 아마디니 국제 성악 콩쿠르, 프랑스 레오폴드 벨랑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파다.
카운터테너에게 배운 적은 없어
그의 말처럼 클래식과 크로스오버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각 장르에서 카운터테너에게 요구되는 것도 다를 터. 클래식에서 중창을 할 일이 많지 않은 카운터테너에게 크로스오버 4중창 무대는 매번 도전이 아니었을까. “클래식 테크닉을 크로스오버 음악에도 활용하니까요. 라포엠의 어떤 곡에는 카운터테너의 변주를 가미해서 좀 더 화려하게 해본다거나, 카운터테너 중심으로 테너, 바리톤이 다른 음역을 맡아보기도 하구요. 초기에 아이디어 낼 때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다보니 회의시간이 엄청 길어지고 연습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았어요. 이젠 회의시간도 짧아졌죠.(웃음)”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소년소녀합창단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노래하다 변성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카운터테너가 됐다. 하지만 카운터테너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을 정도로 주변에 동료가 없었다. 경북예고에 다닐 때도 학교 역사상 최초의 카운터테너 전공자였고, 카운터테너에게 노래를 배운 적도 없단다.
“예고 때는 소프라노, 대학 때는 테너에게 배웠죠. 스위스에서는 알토이자 지휘자 선생님한테 배워서 정말 많은 레퍼토리를 배울 수 있었어요. 유학을 가니 한국보다는 카운터테너가 많아서 다양한 레퍼토리와 발성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파트를 떠나 성악의 모든 메커니즘이 기본적으로 비슷하거든요. 어릴 때 소리내는 법을 배우고, 자라면서 다양한 음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죠. 그렇다보니 카운터테너 선생님이 없다고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어요.”
회복 후에는 유학을 가 유럽에서 자신을 알리려 고군분투했다는데, 프랑스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에 다닐 때 매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섰던 것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팀에서 저 혼자만 동양인이고 다 프랑스, 브라질 사람들이었는데, 그 친구들과 매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연주를 하는 게 참 좋았어요. 베르사유는 여행객들이 관광지로 한번씩 가는 곳인데, 우린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매주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궁전에 사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화려한 시절이었죠.(웃음)”
그는 쿨한 척 하면서 은근히 외로움을 타는 남자였다. 2년전 라포엠 멤버들과 함께 만났을 땐 “원래 혼자 있는 게 익숙한 편”이라고 했었는데, 이제 보니 고독을 즐기는 게 아니라 유학 시절 고독이 몸에 뱄을 뿐이다. 늘 혼자 무대를 찾아다니며 외로움을 벗삼아 살았다면서도 베르사유 팀 활동을 가장 즐거웠던 한때로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맞아요. 음악은 유럽이든 한국이든 어디서든 할 수 있고 어려움은 주변 환경이 아니라 내 자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외국에선 혼자라는 외로움이 컸죠. 혼자 있는 걸 좋아할 필요도 없이 그냥 혼자가 생활이었으니까요. 음악적인 고민이나 경제적 상황까지 혼자 헤쳐나가야 했는데, 라포엠을 만나서 너무 좋아요. 옆에서 나보다 나를 잘 봐주는 3명이 있고,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 멤버들의 아이디어가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됐죠.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운데, 그래도 아직 잠은 집에서 혼자 잡니다.(웃음)”
최성훈은 혼자 왔지만, 보이지 않는 라포엠 군단이 함께 있는 듯 했다. 첫 리사이틀에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들을 쳄발로 등 고악기들로만 구성된 바로크 챔버 앙상블과 협연으로 선보인다기에 클래식에 대한 향수가 있었던 건 아니냐 물으니, 전혀 아니란다. 2년여 팀으로 뭉쳐 있다가 최근 개인 소속사를 정하고 첫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해방감도 느낄 법한데, 지금 이 순간 혼자 있는 게 외롭단다. 뮤지컬 배우들이 많은 EMK엔터테인먼트를 택한 것도 뮤지컬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며, 리사이틀조차 ‘라포엠의 최성훈’으로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크로스오버를 하면서도 늘 클래식에 기반이 되는 곡들을 하고 있어서 향수는 없어요. 라포엠 최성훈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죠. 혼자서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하고 싶은 욕심 보다는 라포엠 안에서 만들고 싶어요. 라포엠 무대를 뮤지컬, 오페라를 접목한 장르로 만들면 되니까요. 늘 최성훈 안에 라포엠이 있는 게 아니라 라포엠 안에 최성훈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라포엠의 콘서트도 최성훈의 콘서트도 다 라포엠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죠.”
고악기 구성 ‘바로크 챔버 앙상블’과 협연
한국에 정착하면서 좋은 점은 또 있다. 어머니가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선택을 언제나 무조건 지지해준 든든한 지원군이지만, 유학 간 아들의 무대를 영 볼 기회가 없었던 어머니는 그에게 애틋한 존재다. “어머니가 연세가 드셔서 그런지 요즘 부쩍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고, ‘내가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싶어요. 제게 항상 ‘네가 행복한 일을 하라’고 하시거든요.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도 한 번도 반대한 적 없었고, 제가 하는 일에 좋은 말만 해주셨죠. 카운터테너가 뭔지도 모르면서 제가 좋아하니까 흔쾌히 지지해 주셨는데, 그렇게 전적으로 믿어주셨기에 책임감도 생겨난 것 같아요. 지금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 하시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