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공주'로 데뷔한 소프라노 박혜상…"음악의 부속품이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2022.02.02 14:1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주연 데뷔한 소프라노 박혜상. [사진 Julius Ahn/크레디아]

 “소프라노 박혜상은 고급스러운 목소리로 파미나를 아름답게 노래했다.” 뉴욕타임스의 음악 비평가 앤서니 토마시니가 쓴 문장이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메트)이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지난달 5일까지 공연한 모차르트 ‘마술피리’를 리뷰하면서 박혜상의 노래를 호평했다.
 
박혜상(34)의 메트 주연 데뷔였다. ‘마술피리’의 파미나는 타미노 왕자가 사랑하게 되는 공주 역할. 높은음을 기교적으로 소화하는 밤의 여왕의 딸이며, 부드럽고 젊은 소리로 노래한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기까지 박혜상은 메트에서 많은 단역과 조연으로 노래했다. 2017년부터 3년 동안 메트의 영아티스트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는 드보르자크 ‘루살카’에서 숲의 정령,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르바리나 등으로 출연하면서 한 단계씩 올라왔다.

지난해 12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주역 데뷔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파미나 공주 역
뉴욕타임스 "고급스러운 소리로 아름답게 노래"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혜상은 지난달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무대 위 마음을 이렇게 기억했다. 메트는 박혜상의 가능성을 끌어내고 키운 곳이다. 서울대 졸업 후 줄리아드 음악원에 두 번 떨어지고 입학했던 그는 메트에서 피어났다. 2018년엔 메트의 갈라 콘서트에서 노래하면서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에 발탁돼 영역을 유럽까지 넓혔다. “메트의 극장장 피터 겔브, 무대 뒤의 모든 스태프, 그리고 경비 아저씨들까지도 내 가족이다.” 그는 “5년 동안 이 극장을 드나들며 모두와 친구가 됐다”며 “메트의 주연 데뷔 무대엔 이 모든 분들이 객석에서 나를 지켜봐줬다”고 했다.
 

바리톤 역할을 맡은 테너 롤란도 비야손(왼쪽)과 소프라노 박혜상. [사진 Julius Ahn/크레디아]

이번에 무대에 함께 선 성악가들이 쟁쟁했다. 타미노 역에는 메트의 단골 성악가인 테너 매튜 폴렌차니, 코믹한 새잡이 파파게노 역에는 전설적인 테너 롤란드 비야손이 바리톤으로 바꿔 출연했다. 드라마틱한 테너였지만 컨디션 난조로 한동안 슬럼프를 겪은 비야손의 바리톤 출연이 뉴욕에서 화제였다. 박혜상은 “고등학교 때 비야손이 출연한 ‘라 트라비아타’ DVD를 보며 펑펑 울었다. 그와 무대를 공유하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박혜상은 이번 ‘마술피리’에서 9차례 노래했다. 유명 연출가 줄리 테이머가 만든 무대로, 독일어 대신 영어로 노래하는 프로덕션이었다. 미국 청중 앞에서 영어로 노래와 대사를 소화한 그는 “부담이 컸지만 무대는 충분히 즐겼다”고 했다.


소프라노 박혜상. [중앙포토]

'뉴욕의 공주'로 데뷔한 박혜상이 한국 무대에 선다. 5일 서울 예술의전당, 다음 달 25일 대구 달서아트센터, 26일 고양아람누리다. 그는 “혼자 튀는 무대, 대단한 걸 보여주는 공연은 하고 싶지 않다”며 “그래서 많은 사람과 함께 우정을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오페라 무대를 사랑한다. 리사이틀에서도 함께 하는 노래가 좋다”고 했다. 이번 한국 투어에서도 현악 4중주단과 함께 사티ㆍ거쉬인ㆍ레스피기 등 편안한 노래들을 들려준다.  
 
박혜상의 비상은 계속된다. 8일에는 뉴욕 필하모닉의 음력 신년음악회에 출연한다. 뉴욕필이 동양계 연주자와 함께 하는 이 무대에서 한국계 지휘자 얼 리와 함께 임긍수의 ‘강 건너 봄이 오듯’, 조두남의 ‘새타령’을 노래할 예정이다. 26일부터는 베를린 국립오페라에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아디나 역할로 주역 데뷔한다. 눈부시게 성장하는 박혜상의 바람은 그저 음악적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음악 속에서 나는 부속으로 존재하고 싶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