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단일 유전자는 위험하다. 지금도 바나나 멸종 위기설이 심심찮게 들리는데, 바로 그 예다. 우리가 먹는 바나나의 대부분은 ‘캐번디시’라는 품종인데,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면 멸종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일명 ‘변종 파나마병’(TR4)이라 불리는 곰팡이가 ‘캐번디시’ 바나나의 잎사귀를 말라 죽이고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다.
유전자가 단일종일 경우 전염병이 그 종을 위협하면 그 종은 멸종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유전자의 다양성을 비롯한 생물다양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재해로 단일종이 위협을 받더라도 유전적 다양성이 있다면 그 종은 보존될 수 있다. 더구나 도시화와 함께 점차 생물들의 종수가 사라지는 이때, 특히 인간과 같이 살고 있는 동물들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시 편리성, 야생동물 희생의 대가
하지만 도시의 확대에 따른 도로와 철도망의 증가는 생태계의 서식지를 조각조각 파편으로 나눴고 동물들이 특정 장소에 갇히게 만들었다. 도로가 동물들의 이동 경로를 가로질러 놓이면서 야생동물들은 목숨을 건 횡단을 계속하고 있다. 서식지의 파편화와 격리화는 동물들의 잦은 찻길 사고로 이어졌으니 도시의 편리성이란, 장소의 파편화와 격리화를 통해 얻어낸 야생동물의 핏값에 다름 아니다.
고라니는 도로가 포장되기 훨씬 이전부터 산기슭, 강기슭과 들판을 가로지르며 내달렸다. 고양이과의 삵은 서식지를 반경 2~3km 안에 두고 먹이를 찾아 건너다녔다. 두꺼비는 서식지를 산에 두고 산란처를 습지에 두어 산과 습지를 오르내렸다. 국내 도로는 계속 연장되고 있으며 교통량 또한 증가 추세라 동물들의 ‘이동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고라니·삵·두꺼비와 같은 야생동물의 비명횡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도로공사 통계에 따르면 로드킬 건수가 고속도로에서만 한해 평균 2000건에 달한다. 그중 90퍼센트가 현장에서 즉사한다.
그 구체적인 예로 두꺼비의 경우를 살펴보자. 특히 봄이면 두꺼비들의 사체가 떼를 지어 도로에 나뒹구는 것을 볼 수 있다. 습성상 산란처와 서식지를 따로 두고 있는 두꺼비들은 태어난 곳으로 이동해서 산란한다. 도로 아래 저수지가 산란처이며 도로 너머 산이 서식지이기 때문에 이 두 곳을 오가는 과정에서 끔찍한 사고를 계속 당하게 된다. 상처를 입거나 죽은 두꺼비들은 그것을 보고 놀란 운전자들에게 2차, 3차의 또 다른 사고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
두꺼비는 살아남은 개체수에 따라 지역 환경 오염 정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인데, 이것을 ‘지표종’이라 한다. 산과 습지의 상위 포식자인 두꺼비는 그 개체수가 줄어들면 지역 생태계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동물 찻길 사고’는 두꺼비라는 특정 생물종의 감소와 함께 생태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온다. 그뿐만 아니라 제한된 수질의 조건에서만 생존하는 두꺼비는 피부 호흡을 하면서 땅과 물에서 서식과 산란을 하기 때문에 그 지역의 환경 조건을 추측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단지 두꺼비라는 하나의 생물 종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에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라도 야생동물은 보호되어야만 한다.
각종 씨앗 퍼뜨리는 통로 되기도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면서 동물들이 원하는 때에 이동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일까?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서식지나 산란처를 이동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태통로(eco-corridor)’를 마련하는 것이다. 생태통로는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돕고 그들의 서식지가 격리되거나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로나 댐, 수중보, 하구 등에 설치된다. 1994년 국내에 생태통로 제도가 도입된 이후 1998년 지리산 시암재에 처음으로 설치돼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마련되고 있다.
생태통로는 크게 육교형과 터널형으로 나뉜다. 어떤 형태의 생태통로를 만들 것인가는 해당 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주로 이용하는 동물들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육교형은 고라니·노루·멧돼지 등이, 터널형은 삵·오소리·너구리 등이 이용하고 있다.
생물다양성은 거의 십 년마다 커다란 도약과 함께 중요 이슈로 발전하고 있다. 리우 지구정상회담에서 협약으로 체결된 것을 시작으로(1992년), 이후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요 주제가 되면서 그 연구와 행동방안이 본격화 되었다(2002년). 또한 국제협의체인 이클레이(ICLEI)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 지방정부들의 조직체로 기후 문제와 생물다양성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2013년).
그중 두드러진 것은 이클레이가 ‘도시 문제’를 ‘생물다양성’을 해결할 대표 과제로 표명하고 ‘도시 생물다양성’을 모토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생물다양성과 도시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정책으로 꼽히고 있다.
‘에코’의 원래 뜻은 ‘집·가족·살림’
이런 생태적 가치관의 필요에 부응해 ‘환경인문학연구소(HfE)’가 2013년 설립됐다. 이 연구소는 지역사회, 기업, 비정부기구(NGO), 정부 및 학술 협력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분과를 조직하고 보다 광범위한 생태 환경의 인식과 이해, 보다 효과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특별한 주제의 인문학을 ‘환경인문학’ 또는 ‘생태인문학’이라 지칭하였는데, 이것이 국제적으로 인문학의 최신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생태 환경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은 어떤 모습일까. ‘생태’의 범위는 일정한 지역사회의 생물과 무생물의 환경을 뜻하기도 하고, 때론 지구 전체 환경을 포함하기도 하면서 많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너무 거창한 접근보다는 간단한 사실 하나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을 시작했으면 한다. ‘생태’를 뜻하는 ‘에코(eco)’는 어원적으로 볼 때 그리스어의 집·세간·살림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에서 왔다. 그 범위가 아무리 넓어도 한 지역에 있는 생물과 무생물 모두를 한 집안의 가족처럼 생각하는 관심과 보살핌이 생태의 뿌리가 된다.
끝없는 도시화의 시대, 지금도 야생동물들은 목숨을 건 도로횡단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을 우리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오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거기서부터 생태계의 보전이 가능할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생태, 즉 에코의 원뜻인 ‘살림’을 위해 동물의 길도 다양하게 열어놓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동물들의 이동을 단절시켜 도로를 만든 인간의 최소한의 양심이 아닐까 .
세계 제2차대전이나 아일랜드 대기근, 바나나의 파나마 병 등에서 볼 수 있듯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종은 단일 유전자종만을 고집할 경우 언제든 큰 재앙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성을 유지하는 작은 실천으로 생태통로를 마련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막힌 경계를 건너는 다리 ‘에코 브리지’가 될 것이다.
도시 생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살림’의 길인 생태통로를 열어주자. 동물들의 막힌 숨통을 트여줄 ‘사잇길’을 만들어 주자. 도로망에 설치된 생태통로는 도시의 숨통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숨통도 트일 것이고 자연과 도시도 어우러질 것이다. 자, 이제 우리가 그것을 잇는 에코 브리지, ‘살림의 다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