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공시의 세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해 LG화학은 배터리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이라는 100% 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LG화학에서 배터리부문 자산과 부채를 떼내 LG엔솔이라는 새 회사를 만든 것입니다. LG화학이 이런 물적분할을 단행한 이유는 배터리 투자자금 때문입니다. LG엔솔을 증시에 상장시키면 대규모 신주 공모자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LG엔솔은 이달 공모청약을 진행하고 상장할 예정인데, 약 10조원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LG화학 주주들은 배터리 사업 성장성을 믿고 투자했는데, LG엔솔 분할과 상장 과정에서 소외되는 등 주주가치 훼손이 심하다며 반발해 왔습니다. 물적분할 단계에서 LG엔솔이 발행하는 신주는 모두 LG화학에 배정되어 100% 모자(母子)관계가 형성됩니다. LG엔솔 상장단계에서도 LG화학 주주들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인센티브는 없습니다.
LG엔솔 공모주식을 받으려면 다른 투자자들처럼 공모청약을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주주들은 “이렇게 모자회사가 모두 증시에 상장되어 있으면 자회사 가치가 커져도 모회사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 중복상장 효과가 나타난다”며 “물적분할에 이은 상장추진으로 LG화학 주가가 하락하는 등 주주이익이 보호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중공업, SK이노베이션, CJENM 등 물적분할 뒤 상장하였거나 상장을 계획중인 기업들도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주주들의 강한 반발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후 증시에서 물적분할이 큰 이슈가 되자 이번에 두 당이 모두 물적분할을 손보겠다며 대선 표심잡기에 나선 것입니다. 공약에 따르면 물적분할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물적분할한 기업이 증시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진행할 때 신주를 기존 주주들에게 먼저 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우선배정을 할 지, 아예 신주인수권을 부여를 할 지 등 세부사안에 대해서는 두 당 모두 확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컨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을 상장할 경우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신주 우선청약 기회를 제공한다고 합시다. 주주들은 청약을 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포기하면 실권물량은 일반공모로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주인수권을 부여한다면 청약을 포기하는 주주들은 이 증서를 매각하여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시 신주발행은 일반 유상증자와는 달라서 이 같은 신주인수권증서 거래가 가능할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양당이 자본시장 개선방안으로 내놓은 공약들이 100% 다 지켜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물적분할은 공통공약으로 제시될만큼 중대이슈가 되어있기 때문에, 올해 대선 이후 어떤 식으로는 개선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