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 확산
유명 인사 혼외자 화제 때 의뢰 늘어
질병관리청에 등록된 유전자 검사 기관은 대학병원 등 의료기관과 비의료기관을 합쳐 236곳(11월 기준)이다. 주로 대학병원이나 민간 연구업체에서 친자 확인 검사를 시행한다. 그중 민간 업체는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업무를 할 수 있어 친자 확인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은 국내에 5~6곳에 불과하다. 황춘홍 다우진유전자연구소 대표는 “이혼소송에도 많이 쓰이지만 호적정정 등 다양한 이유로 검사를 요청하는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우리 회사의 경우 자체 개발한 시약을 사용해 경쟁력이 있지만 대개는 시약 비용이 비싸고, 고가의 장비가 갖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국내 업체 대부분은 친자 확인 검사 외에도 다양한 유전자 사업을 병행한다”고 말했다.
검사 비용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80만~100만원에 달했지만 현재는 10만원대(민간 업체 1인 기준)로 뚝 떨어졌다. 검사 비용이 낮아진데는 2015년 초 우리 정부가 친자 확인 등에 사용되는 DNA 시약을 순수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DNA 시약은 친자 확인 뿐만 아니라 범인 등의 유전자 정보나 시료를 감식하는데 필수다. 이전까지는 정부가 100% 미국 제품을 수입해서 사용했다. 국산 시약이 보편화되고 비용 부담이 줄어들자 친자 확인 검사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도 더욱 높아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근 5년 간 매년 10% 이상 검사 건수가 증가했다”며 “2015년 간통법이 폐지된 후에는 특히 위자료 및 양육비 청구 목적으로 받는 사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에선 검사 당사자인 자녀나 배우자 모르게 머리카락이나 칫솔을 가져다 검사를 의뢰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검사 대상자가 미성년자·심신미약자이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검사 의뢰가 가능하다. 다만 공공기관에 제출해 법적 효력을 지니려면 본인 동의 후 신분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검사 결과는 1~2일 내 의뢰자에게 통보된다. B업체 관계자는 “우리 회사에 개인 확인용으로 접수된 건 가운데는 30% 정도가 친자 불일치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업체 관계자 “30% 정도 친자 불일치”
부모 자식 여부를 가리는 ‘친생자 관계 존부 확인(부인) 소송’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5년 2292건에서 10년 만에 5224건(2015년)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가사소송이 다소 줄었지만 친자 확인과 관련한 소송이 전체 가사 소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외려 5년 전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법조계는 경기 불황에 따른 여파로 기초생활수급 자격 때문에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부양의무자 유무가 중요한데, 가족사 때문에 불가피하게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을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려뒀다가 뒤늦게 소송으로 취소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며 가족 간 유산 상속을 둘러싼 소송도 늘었다.
개방적 성문화 확산으로 혼외자 출산이 증가하며 친자 여부를 놓고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민법 제844조에 따르면 혼인 성립의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 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는 친생자로 추정한다. 쉽게 말해 특정 시일에 태어난 아이는 법에서 정하는 특이사항이 없는 한,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법률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가 아이를 출산하면 남편의 아이로 추정되지만, 친자 관계가 아닌 경우 일정한 기한 내에 남편이나 아내가 친생 추정을 번복하는 소송을 제기해 법률상 부자 관계를 부정할 수 있다. 반대로 친생자 추정을 받지 않았거나 허위 출생신고로 친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엔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간단한 유전자 검사만으로 혈연 관계 확인이 쉽고 정확해진 점도 친생자 소송이 증가한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친자 확인에 유전자 검사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1년부터다. 한해 5000건에 달하는 친자 확인 소송에서 유전자 검사가 판결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만큼 정확도가 높고 확실한 증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보람 이혼전문 변호사는 “과거 유전자 검사에 대한 신뢰도와 비용 문제 때문에 소송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최근 유전자 검사 기관이 질적·양적으로 성장하면서 법원도 유력한 증거로 인정하고 있어 소송이 함께 증가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으로부터 유전자 검사 명령을 받았을 때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재판에 불리한 심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영국은 아마존·대형마트·약국서 검사 키트 손쉽게 구매
그중 하나인 ‘아이덴티진’은 친자 확인 전문 기업에서 생산하는 검사 키트로, 10년 전부터 대형 약국 체인점을 통해 판매했다. 현재도 미국 현지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대형마트 체인 월마트, 약국 체인 월그린, 라이트에이드 등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제품은 키트 비용 30달러에 실험실 의뢰 비용 89달러를 더해 총 119달러(약 14만원)면 친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미국 내 사설 DNA 검사업체를 이용하는데 평균 450달러가 드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저렴하고, 간편하게 결과를 알 수 있는 셈이다.
영국도 대형 약국 체인인 부츠 등에서 친자확인 검사 키트를 살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자 검사센터 중 한곳인 영국 진트랙바이오랩스에 따르면 연간 10만건에 달하는 의뢰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태아의 경우 친자 확인을 목적으로 유전자 검사가 법률로 금지돼 있지만 영국에선 임신 10주차 이후부터 가능하다. 친자 확인 검사 비용은 20만원 내외로,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저렴한 편이다.
한편 독일 정부는 2016년 양육비 소송에 대해 친모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의 확인을 의무화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자녀의 양육비를 부담하는 남성의 요청이 있을 경우 여성은 자녀의 친자 확인 검사 결과를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다만 친부를 밝힐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인정될 때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 개정 법안에 따르면 소송을 건 남성이 승소할 경우 친부로부터 최대 2년치의 양육비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법이 통과된지 5년 여가 흘렀지만 현지에선 여전히 여성에게 아이의 친부 공개를 의무화한 것을 두고 “여성과 아이의 수치심을 자극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