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법 에세이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출간한 박 판사는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남산 서울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창밖 풍경을 자랑했다. 그런데 “사실 창문은 종일 블라인드로 가려놓는다”고 했다. “판사 한 명이 쓰는 판결문만 1년에 2000~3000건인데 창밖을 보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란다.
부모님 뜻 따라 법대 진학한 문학소년
가난한 집안에서 7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책이 좋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같은 고전을 즐겨봤고 중학생 때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문예부에선 교지 편집을 했다. 당시 도서관에서 한 권에 700페이지로 된 15권짜리 세계사 책에 푹 빠져 공부에 소홀했던 적도 있다. 역사학도를 꿈꿨지만, “우리 집안에 판사 한 명은 나와야 한다”는 부모님 뜻에 따라 법대에 진학했다.
그 후 약 20년 만에 되찾은 문학적 감수성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골프를 끊고 주말마다 국립도서관을 찾아 하루종일 책을 2~3권씩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만 1000권을 훌쩍 넘는다. “10년이 지나 55살이 되니 다시 법이 보이더라”는 그는 지금도 “낮엔 판사, 밤엔 인문학도”를 자처하며 산다. 아내가 “낮에도 글(법서)만 보면서 밤에도 글을 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활자로 쌓인 독 활자로 푼다.”
한국 사법사상 최초 ‘심리적 부검’ 도입
이른바 ‘의사 사위 지참금 청구 사건’(중매로 결혼한 후 수년간 따로 살다 이혼 소송에 패하자 장인어른이 생전 각서를 써준 지참금을 달라는 소송)의 의사에게 “염치없다”고 판결한 것도, “여성을 보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문목욕 서비스를 받은 80대 할머니에게 급여 지급을 거절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사람은 수치심을 밖으로 표현하기를 꺼리는 본성이 있다”며 지급하도록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인간의 수치심도 헌법이 보장하는 존엄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약 34년을 판사로 살았지만, 그는 “다음 생엔 판사는 절대 안 한다”고 장담했다. “삶이라는 건 다양하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판사는 그 본능을 억제하는 직업”이라서다. “판사가 사람을 만나는 유일한 곳이 법정인데, 감정을 보이면 큰일 나죠. 주변 민원도 받아줄 순 없으니 판사를 오래 하면 인간관계도 끊어져요.” 그래서 그는 책을 읽는다. “이제 판사들은 법정 밖으로, 세상 속으로 뛰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법정에서 만날 사람을 위해서.”(『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p.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