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인터뷰] 뉴욕 한식당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
‘미식업계의 오스카상’ 43위에 올라
-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에 선정된 이유를 꼽는다면.
- “처음 요리를 시작한 15년 전만 해도 ‘좋은 레스토랑’ 하면 프랑스 또는 미국식이 인기였다. 하지만 요즘은 세계 여러 나라의 오리지널리티(전통과 독창성)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다. 아토믹스 역시 한식 컨셉트와 스토리를 독창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은 것 같다.”
- ‘아토믹스’의 컨셉트는.
- “한식의 지혜와 맛을 기반으로 다양한 테크닉과 식재료를 두루 사용하는 모던 레스토랑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식 상차림과는 다르게 코스 요리를 제공하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한식 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또 식기·메뉴카드·유니폼 등을 한국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면서 고급스러운 한국 문화 또한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 한글 발음대로 적은 메뉴판이 유명하다.
-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유명 레스토랑에 가면 대부분 아시안 식재료를 일본 발음으로 적거나 영어로 번역해 적는다. 그게 늘 안타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간장(청장·중장·진장)·된장·다시마·장아찌·두부·초피·송이버섯·표고버섯·조청·감태 등의 식재료와 찜·조림·나물·반찬·죽 등의 조리법 명칭을 알파벳으로 적되 한글 발음 그대로 적고 있다. 미나리(Minari), 쑥(Ssuk) 이런 식이다. 외국인 손님들이 ‘이게 뭔가’ 궁금해 할 때 자연스레 한식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는 게 우리 방식이다.”
- 전 세계에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뉴욕과 유럽에서 느끼는 K푸드는 어떤가.
- “뉴욕에 한식당이 많이 오픈했고 위치도 이스트빌리지, 미드타운, 트라이베카, 브룩클린 등 다양해졌다. 한국 식재료와 음식을 파는 마트 풍경도 달라졌다. 처음 뉴욕에 온 10년 전만 해도 주로 한국인이 이용했는데 요즘은 외국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올해는 특히 영화 ‘미나리’ 덕분에 뉴욕의 큰 마켓들에서 미나리가 아주 인기라고 한다.(웃음) 뉴저지, 오레곤 등에서 우리 농산물을 키우는 한국인 농부들도 많아졌다. K팝-K무비-K푸드가 유기적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공동체 식문화 진화에 힘 보태고 싶어
- 서양식 코스 상차림 때문에 ‘모던 한식은 진짜 한식이 아니다’라는 비판도 많다.
- “음식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이 중요한 만큼 모든 한국인에게는 각자의 한식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어머니가 해주신 밥, 누군가에겐 떡볶이가 한식을 대표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토믹스의 상차림은 한식으로 안 느껴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한식 글로벌화’에 아직 정답은 없다. 전통 그대로를 유지하기보다, 뉴욕에 사는 외국인 또는 뉴욕에 여행 온 여러 나라 사람에게 한식과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외국 셰프들과 협업 이벤트도 많이 갖는다.
-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나 또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모든 셰프들은 색다른 식재료에 관심이 많다. 특히 영어로 일일이 번역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한국의 나물류와 뿌리채소들을 아주 좋아한다. 발효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 나물을 예로 들면, 한국에선 생나물이든 삶은 나물이든 간장·된장 등에 가볍게 무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보기엔 아주 가벼워 보이지만 발효 음식 특유의 깊이 있는 맛이 일품이다. 보통 양식에선 감칠맛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 스톡(고기·생선·뼈·채소 등을 우려낸 국물)을 끓이고 또 그걸 졸여서 소스를 만든다. 그런데 한국에는 깊은 맛을 내는 소스가 집집마다 항상 구비돼 있다니까 엄청 신기해한다.”(웃음)
- 한식 셰프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 “이번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1위를 수상한 덴마크 레스토랑 ‘노마’는 이미 여러 차례 이 리스트에 올랐다. 그래서 르네 레드제피 셰프의 ‘이 리스트에 선정되면서 덴마크와 노르딕 음식에 큰 의미와 변화가 생겼다’는 말이 진지하게 들리더라. 식문화가 주변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은 그만큼 엄청나다. 더 나은 음식 문화를 위해 작은 부분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