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빈은 26일(현지시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카운티 소년법원에 범죄기록 말소 청구서를 접수했다. BBC는 27일 “콜빈은 (66년이 지나도) 보호관찰을 공식적으로 끝내지 않은 법원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콜빈은 이날 신청서를 제출한 뒤 지지자들과 만나 “이젠 ‘나는 비행 청소년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며 “범죄기록이 말소된다는 것은 손주들과 증손주들, 그리고 다른 흑인 아이들에게 의미가 큰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자 파크스보다 9개월 앞서
저항하는 콜빈에게 수갑을 채운 경찰이 그를 데리고 간 곳은 청소년 구금센터가 아닌 성인 감옥이었다. 매트리스도 없는 침대와 부서진 싱크대만 있는 독방에 홀로 갇힌 콜빈은 3시간 만에 풀려났지만, 불안한 생활은 계속됐다. 마을 사람들은 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 KKK단의 보복을 우려해 콜빈의 집 보초를 섰고, 콜빈의 아버지는 총을 장전한 채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콜빈은 이후 항소 끝에 경찰 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사는 이와 함께 콜빈의 비행이 확인됐다며 ‘좋은 행동을 할 때까지’ 보호관찰 처분을 내렸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버스 분리 정책에 저항했다가 체포된 15세 소녀는 그러나 사회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흑인 인권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CCP)가 이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벌 철폐운동을 벌일 경우 콜빈이 미혼모라는 점이 부각돼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9개월 후인 1955년 12월 NACCP 몽고메리 지부에서 활동하던 로자 파크스가 콜빈과 같은 이유로 체포됐고,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의 주도로 보이콧이 이어진 끝에 1956년 몽고메리의 인종차별 정책은 위헌 결정을 받아 철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