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週 漢字] 電(전)-‘에너지의 신’이 된 전기

중앙일보

입력 2021.09.11 00:24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한자 9/11

전기가 모든 에너지를 대표하는 시대가 됐다. 전기를 대신할 전혀 새로운 에너지가 나올 때까지 이러한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전기가 ‘에너지의 신(神)’이 된 것이다.
 
전기(電氣)를 뜻하는 전(電)이 신(神)의 원래 글자인 신(申)에서 분화해 만들어진 글자임을 보면, 3000여 년 전의 한자가 21세기의 미래를 예시한 듯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신(申)은 갑골문에서 번쩍거리는 ‘번개’를 그렸다. 양전기와 음전기가 만나 가공의 힘을 현시(顯示, 나타내 보임)하는 번개는 하늘의 계시이자 신성(神性)의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인 듯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힘은 물론 영적 광명·깨달음, 계시·예지 등을 상징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번개(申)는 더 없는 숭배의 대상이 됐고, 그 때문에 제사를 뜻하는 시(示)가 들어 신(神)으로 변했다. 자연신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번개가 모든 신성의 총칭으로 올라서서 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번개는 마른 날에 치기도 하지만 비가 올 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린 우(雨)를 더해 전(電)이 됐다. 이렇게 신(申)은 신(神)과 전(電)으로 분화해 각각의 의미를 잘 분담해 왔다.
 
그러나 영어는 다르다. 전기(電氣)는 electricity의 번역어인데, electricity는 electric의 명사형이고, electric은 다시 라틴어 electrum에서, 그전 그리스어 ēlektron에서 왔다.
 
이들은 보석의 일종인 호박(琥珀, amber)에서 근원(根源)했다. 송진 등과 같은 나무 기름이 땅속에서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만들어진 호박(琥珀)을 문지르면 정전기가 생긴다는 관찰에서 호박에서 ‘전기’라는 개념을 가져왔던 것이다.
 
인간 활동의 근원은 물론 모든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힘인 에너지는 인류 생존의 절대적 조건이 됐다. 화석 에너지의 고갈과 폐해로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는 지금, 모든 동력을 전기에서 찾고 있지만, 화석 에너지를 대신해 전기를 만들 원천을 어디서 찾을지가 화두다.
 
‘번개’로써 ‘전기’를 그렸고, 전기를 ‘신’으로 격상해 숭배하며 신성시해 온 과정을 오롯이 담은 한자, 그 속에는 석유의 시대가 가고 전기가 진정한 신이 되는 지금의 시대에 대한 예견, 미래의 에너지가 가야 할 길,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원천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