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첫 독창회 여는 테너 존노
19일 예술의전당에서 첫 독창회를 앞두고 있는 존노는 그후 1년을 딱 그 모습 그대로, 클래식과 크로스오버를 분주히 넘나들며 살아왔다.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의 데뷔앨범을 7월에 내며 8월에는 콘서트 투어를 했고, 얼마 전 ‘정명훈 & 원코리아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합창’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천년의 노래’에는 각각 솔리스트로 나섰다.
지난 7일 발매된 첫 솔로앨범은 클래식으로만 채워 선주문 2만장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NSQG’라는 제목이 마치 암호같다. ‘Noble Simplicity & Quiet Grandeur(고귀하며 단순하고, 고요하며 웅장한)’는 18세기 미술사학자 빙켈만이 고대 그리스 미술을 설명한 말인데, 존노의 음악철학이기도 하다. 단단한 대리석 재질이지만 천사의 날개를 달고 곧 날아갈 듯한 그리스 조각처럼, 고전적이되 무겁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달콤한 음성의 근원이 여기 있는 것 같다.
“음악적으로는 모차르트 시대 고전주의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단순한 구조에 쉬운 멜로디로 들리지만 알고 보면 화성학적으로 단단하고 깊이가 있어요. 제가 모차르트 테너기도 하고, ‘복잡하게 꾀부리지 말고, 단순하게 내공을 쌓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으로 유학시절을 버텨 왔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SNS 아이디로 써왔는데, 이렇게 앨범명이 될 줄은 저도 몰랐네요.”
줄리어드·예일대서 촉망받던 유망주
사실 그와의 만남은 1년 여 만인데, 영 다른 사람 같았다. 경연 직후 라비던스 팀으로 만나 “크로스오버계의 BTS가 되겠다”던 씩씩한 모습은 간데없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한다는 건 평생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니. “제가 혼자서는 쫄보여서요.(웃음). 그때는 뭔가 해보겠다는 포부만 있었다면, 뭔가를 하고 있는 지금은 ‘뭐든지 당연하게 되는 게 아니구나, 감사한 일이구나’ 계속 느끼고 있거든요. 그게 달라진 것 같아요.”
팬들의 사랑도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는 얘기다. 매일 자신을 향한 편지들이 올라오는 팬카페에 들어가는 일이 습관이 됐지만, 늘 신기하고 감사하단다. “팬카페가 뭔지도 몰랐는데, ‘힐링존’ 카페에서 외려 제가 힐링을 받아요. 힘들고 나약해졌을 때 들어가면, 이렇게 표현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제가 활동할 수 있구나 싶죠. 제 모든 공연에 오셔서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분도 계신데, 신기하게도 고화질이에요. (웃음) 못 오시는 분들을 위해 사명감으로 해주시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의 팬덤과 클래식 애호가 사이의 교집합은 넓지 않다. ‘골수’ 클래식 애호가들은 팬텀싱어 출신 성악가들의 폭넓은 활약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데, 서운하진 않을까. “애호가분들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것도 아닌데 분에 넘치게 좋은 기회를 얻잖아요. 더 열심히 해야죠. 만약 제가 발전하지 않고 게을러지면 그분들이 더 속상하실 테니까요.”
‘엄청난 커리어’는 아닐지 몰라도, 줄리어드와 예일대에서 유망주로 촉망받던 그다. 하지만 보장된 미래는 없었다. 세상의 모든 청년들처럼 미래가 불안했고, 열심히 기회를 찾다가 팬텀싱어를 만났다. “오페라 가수라는 직업이 정말 되기도 어렵고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는 현실을 점점 알아가던 때였어요. 열악한 환경이란 걸 알면서도,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며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다른 청년들도 다들 그렇지 않나요. 미래가 불확실하니, 일단 뭐라도 하는 거죠.”
예일대에선 오페라 단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무대에 섰다. 10월 13일 직접 각색과 연출을 겸해 선보이는 살롱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도 그 경험이 녹아있다. “제가 많이 했고, 특히 오페라를 소개하기에 좋은 작품이거든요. 오페라 한 편 하려면 보통 억대 비용이 드는데, 삶 속에 오페라가 들어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기획해 봤어요. 티켓도 안 비싸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 오페라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아직 비밀이지만, 또 다른 팬텀싱어도 나올 예정입니다.(웃음)”
자신만의 목소리 찾기 계속
본격 오페라 무대에 대한 팬들의 요구도 빗발치지만, 한 프로덕션에서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대형 오페라는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대신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소통할 생각이란다. “활동기간만 정리되면 제가 잘할 수 있는 ‘마술피리’나 ‘사랑의 묘약’은 조만간 하게 될 것 같아요. 미국에서 많이 했던 현대 오페라에도 관심이 있어서, 지금 작곡하시는 분들 연락도 기다립니다.(웃음)”
창작곡에 대한 욕심도 있고, 직접 작곡도 배우고 있다는 그는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퀸시 존스를 꼽았다. 항상 도전하고 발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비던스가 그분 노래를 준비할 때 다큐멘터리를 봤거든요. 처음엔 그냥 재즈뮤지션이었지만 파리에 유학 가서 오케스트라를 공부하고, 재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프랭크 시나트라를 만나 더 대중적인 재즈를 하다가 마이클 잭슨을 발굴하고, 나중엔 힙합레이블까지 만들었죠. 점점 발전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어요. 저도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늘 도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뜻밖인건 또 있다. 한창 바쁜 지금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전도사가 됐다. 영향력이 있을 때 찬양사역을 하기 위해서란다. 좀처럼 ‘당연하지 않은’ 길만 가는 그의 행보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분명한 건 늘 ‘당연하지 않은’ 곳에서 그를 만나게 될 거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