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특수학교 ‘서진학교’의 놀라운 반전
우여곡절 끝에 서진학교는 지난해 3월 개교했다. 못 지어질 뻔 하다가 기어이 지었고, 심지어 잘 지어서 상까지 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용미 건축가(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교육청 프로젝트로 이 정도 수준의 학교가 지어졌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공공성과 사회적 의미를 고려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작으로 뽑았다”고 전했다.
“아이가 이런 학교서 배울 수 있어 감격”
인근에 또 다른 초등학교가 개교했고, 주민들은 공진초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영구임대아파트의 아이들이 졸업한 뒤 학생 수는 대폭 줄었다. 결국 학교는 문을 닫고 이름만 마곡동으로 옮겨졌다. 2012년 서울시교육청은 이 부지에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시작됐다. 강서구에 이미 특수학교가 있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짓겠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공약이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강서구 어딘가에서 허준이 태어났으며, 학교 앞 거리가 허준 테마 거리라는 것이 한방병원 건립의 근거가 됐다.
서진학교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과정인 전공과까지 모두 한 건물에 있다. 한 학생이 입학하면 전공과를 마치기까지 14년을 생활한다. 학교에는 세탁실·가사실·감각운동실·여가생활실 등 다양한 특별실이 있다. 학생들은 일상생활부터 직업훈련까지 많은 것을 학교에서 배운다. 이런 학생들을 잘 보조하기 위해 교직원도 많다. 한 학급당 최대 정원이 초·중학교는 6명, 고등학교는 7명인데 한 반당 담임선생님 외에 수업 보조 선생님이 두 명씩 배치된다. 학생은 총 170명이고, 교직원은 총 123명이다.
갈등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서진학교는 건축가에게 절대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건축비 예산이 3.3㎡당 495만원이었다. 일반 학교의 건축비도 비슷한 수준이지만, 이 예산으로 특수학교를 지으라는 것은 기적을 만들라는 것과 같았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두 차례 발표하는 아파트 기본형 건축비가 지난 3월 기준 3.3㎡당 653만4000원이다. 김빈 건축가는 “교육청의 요청으로 설계 과정에서 건물 면적이 처음보다 늘어났고 공사비도 늘어나 3.3㎡당 682만원으로 책정됐지만, 이 예산으로도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학교를 ‘ㅁ’자 만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발달 장애의 특성상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혹여나 갈 곳을 잊고 헤매더라도 한 층에서 맴돌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공간 전체가 일종의 회유 동선인 셈이다. 리모델링한 기존 학교의 복도 폭은 2.4m로 좁지만, 신축한 공간의 복도 폭은 4.5~5.5m에 달한다. 넓은 복도는 제2의 교실 역할도 한다.
“아이들에게 맞춘 공간으로 거듭나야”
서진학교의 중정에는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나무를 가운데 놓고 나선형으로 디자인한 의자가 있다. 층층이 단차가 발생하는 덕에 의자의 높이가 다양하다. 연령대가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다니는 서진학교의 맞춤형 의자다. 휠체어를 타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높여 만든 화분도 중정에 놓여 있다.
이렇듯 서진학교에서는 모두가 배려 받는다. 유종수 건축가는 “특수학교라는 걸 모르고 서진학교에 온다면 일반 학교와 유별나게 다른 점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더 편하고 쾌적하게 배우고 놀 수 있는 학교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학부모 예유정(49)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까지 일반 학교 특수학급에 다니다 전학 왔는데 이런 학교서 배울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오늘날의 학교는 여전히 쭉 나열된 교실과 복도의 집합체다. 아이들은 그런 불편한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서진학교의 넓은 복도, 통창, 중정, 발코니, 사용하기 편한 화장실, 다양한 특별실 등은 일반 학교에서도 필요한 공간이다. 이런 학교가 많아진다면 특수학교를 따로 지을 필요 없이,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통합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된다. 박광재 한국복지대 교수(유니버설건축과)는 “학교야말로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게 유연하게 맞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