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 〈26〉 이멜다와 구보타
내 나이 이제 70 중반을 훌쩍 넘었다. 홀아비 생활이 어언 30년이나 되는 것 같다. 그다지 불편한 건 없다. 그냥저냥 산다. 딸 하나와 한집에 살고 있다. 바로 어제 KBS ‘가요무대’ 녹화도 무사히 끝냈고(목소리가 옛날 같지 않기 때문에 많이 신경이 쓰였다) 미술 전시 요청도 여기저기 들어오기 때문에 나름 분주하게 만들어준다. 금년 말까지는 귀하께서 읽고 계신 나의 연재를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원고 매주 써내는 일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착해서 복 받은 후배 엄영수
재작년이었던가. 어느 날 엄영수가 나더러 “형! 이번엔 제가 먼저 일을 저지르게 생겼습니다” 하길래 “뭐라구, 이번엔 순서를 바꾸자구? 좋아, 바꾸지 뭐, 그게 누군데” 하고 대뜸 물었다.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오랜 연예생활 경험에서 열혈팬과 연예인 사이쯤으로 넘어가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50여 년 대한민국 방송 연예계에 누가 나한테 딱 한 사람 ‘착한 사마리아인’을 대라면 나는 곧장 엄영수를 댈 것이다. 여기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엔 두 사람이 TV에도 여기저기 출연해 세 번째 결혼 사실을 알리곤 하지만 결국 재미교포 에스더 여사가 남자를 잘 만난 것이고 착한 내 후배 엄영수도 막판에 반려자를 잘 만난 것이다.
자! 그럼 나는 어쩔 것이냐. 맨날 엄영수 타령만 하고 있어야 하느냐. 아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뜻밖의 만남이 많은 축에 속한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두 명이다. 물론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엄영수 같은 동반자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미리 말씀드리지만 중앙SUNDAY 애독자님한텐 극히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명하는 상대를 들으시고 “에이! 뻥치고 있네” 이렇게 말하면서 보던 신문을 휙! 집어 던지실까 봐 그런다. 그게 누구냐.
첫 번째 상대는 필리핀 국부로 추앙받는 고인이 되신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92) 여사다. 젊을 때 월드 미스유니버스로 지성과 미모를 양껏 뽐냈던 그 유명한 구두 3000켤레의 이멜다 여사 말이다. 다른 한 분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 최상급 미술가인 백남준 선배(2006년 작고)의 부인 일본의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 여사다(1937년생인 구보타 여사도 2015년에 작고하셨다).
곧이어서 유인경 최유라 조영남 환영 만찬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 전 대통령 영부인 이멜다 여사가 특별 초빙된 것이다. 당연히 이멜다와 조영남이 헤드 테이블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다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유인경 최유라 조영남 환영 만찬 분위기가 점점 이멜다 조영남 밀회 장소로 변해갔다. 이멜다 여사가 먼저 얘기를 시작했다. 필리핀과 한국은 우방국으로 잘 지내왔는데 오늘을 계기로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되자.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온 가수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늘 저녁 이렇게 저녁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큰 기쁨을 느낀다며 연설 후 비서를 시켜 무슨 두꺼운 책을 들고 와 남이 듣건 말건 내 쪽으로 몸을 기대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설명을 해대는 것이었다. 비서한테 큰 종이를 가져오라 해서 거기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이름을 적어가며 이 사람은 어떻구 저 대통령은 어떻구 끊임없이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 잠깐만요. 지금 다른 사람들이 우릴 다 주목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진 나왔는데 감히 한국에서 온 카수 나부랭이가 어찌 그런 결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나를 소개하면서 오랜 동안 싱글로 지냈다고 해서 그랬는지 나한테 연애하고 결혼하자는 얘기만 빼고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몽땅 다하는 것 같았다. 무쟈게 외로우신 분이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홀로 지내는 생활이 너무도 지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 과장?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두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내가 어찌 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흘러 파티가 끝나게 됐는데 이멜다 여사만은 일어설 기세가 아니었다. 비서가 수시로 가까이 와 일어서자고 말해도 몇 번이나 거절하고 나와의 얘기를 이어갔다.
이멜다 여사, 3000켤레 구두로 유명
어찌어찌해서 파티가 다 끝난 다음 유인경 최유라가 득달같이 나한테 짓궂은 요구를 했다. 그것은 일종의 데모였다. 지금까지 구보타와 친밀하게 지낸 건 어쩔 거냐는 거다. 구보타란 다름 아닌 내가 평생 존경해 왔던 고 백남준 선생의 미망인이었다. 경기도 용인 소재 ‘한국미술관’ 초대 김윤순 관장님이 원래부터 구보타 여사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백 선생이 돌아가신 후 심심할 때마다 김 관장을 찾아 한국에 올 때마다 나를 불러 구보타 여사의 파트너 역할을 맡게 해서 급격히 친해졌던 거다. 구보타 여사는 비틀스의 존 레넌 부인이었던 오노 요코처럼 플럭서스(Fluxus) 같은 미술그룹에 초기 멤버로 활약했던 철저한 팝아트(pop art)의 기수였다. 나로선 오히려 백남준의 TV 모형 작품보다 구보타 여사의 ‘TV Tree(TV 나무)’라는 제목의 지금 강남 포스코 건물 로비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을 더 좋아할 정도로 강도 높은 팝아티스트며 설치미술가였다. 나를 그렇게 좋아한 건 나의 말과 행동이 백남준을 딱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이멜다와 구보타(마치 자매 이름 같다)의 그때까지의 공통점은 첫째는 세계적인 명사라는 것과 둘째는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는 것이다. 셋째가 나처럼 자유로운 처지라는 사실이다. 가만 보자! 그런데 난 세 번째 계획이 없다는 얘긴가! 흠! 그럴 거란 보장도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