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큰데 금리 올린다고?

중앙일보

입력 2021.08.14 00:47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기준금리, 지금 꼭 올려야 하나요

국내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한 분위기다. JP모건은 이달 초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이 이달 조기 금리 인상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오는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결정한다. 앞서 한은은 수차례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력하게 내비쳤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 활동이 원활히 돌아간다면 금리 인상을 (더) 늦출 수 없다”고 한 데 이어, 이튿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늦으면 늦을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했다.
 
한은 금통위 역시 지난달 정기회의에서 위원 6명 중 5명이 금리 인상 필요성에 공감했다. 공개된 의사록을 보면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가까운 시일 내에 일부 조정할 필요가 있다” “너무 늦지 않게 시작하자” 등의 발언이 오갔다. 실현되면 현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상 후 단계적 추가 인상이 유력하다. 그런데, ‘굳이 지금’ 올려야 하는지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크게 다섯 가지 퀘스천 마크(물음표)가 따른다.

델타변이 확산 속 경기 회복 더뎌
WSJ “아시아국 수출 엔진 느려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부담도 커져
섣부른 금리 인상, 양극화 부채질
“미 금리인상 맞춰 올리는 게 안전”

1 경기 회복 ‘착시’ 없나  
 

이주열(左), 제롬 파월(右)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최대 명분은 빠른 경기 회복세다. 전년 동기 대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1.1%에서 올 1분기 1.9%, 2분기 5.9%로 상승세가 뚜렷하다. 수출액은 지난달 554억4000만 달러로 29.6% 증가하면서 무역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56년 이래로 65년 만에 최대치였다. 고용 지표도 회복세다. 취업자 수가 4개월 연속(3~6월) 증가한 반면 실업자 수와 실업률은 3개월 연속(4~6월) 감소했다.


문제는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일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국내 일일 확진자 수는 2000명을 돌파했다. 이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내수 경기 부진 가능성도 커졌다. 수출도 빨간불이 켜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일(현지시간) 전문가 말을 인용해 “델타 변이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수출국의 엔진이 느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지난달 보고서에서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한 감염률이 낮더라도 경제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기업들의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지표인 기업경기실사지수(BSI) 가운데 전(全) 산업 업황 BSI는 지난달 87로 5개월 만에 하락했다. 100보다 높으면 경기 호전을, 낮으면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특히 코로나19 타격에서 회복이 더딘 중소기업일수록 불안감은 크다. 올 1분기 중기 대출액은 1193조4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6.4% 증가했다. 금리를 올리면 이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한 금리 인상이 한계기업(재무구조 부실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엔 직격탄으로 작용해 이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2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경기 회복세에 따른 가파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가 한은이 조기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게 만들었다. 전년 동기 대비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6%로 4개월째 2%대를 기록했다. 한은 금통위원인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연간으로 2%대 전체 물가 상승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지난 2분기 민간 소비 성장률은 12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지난해 억눌렸던 소비자의 ‘보복 소비’를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 우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 호조에 따른 대외 경기 회복세에 비해, 각종 대면 서비스 중심의 내수 경기는 여전히 회복이 덜 됐다”며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양극화 심화로 저소득층일수록 스태그플레이션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저소득층 체감도가 높은 농축수산물의 물가가 지난달 9.6%, 올 상반기 월평균 12.6% 상승한 점을 사례로 들었다. 그리고 섣부른 금리 인상이 이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리를 올렸을 때 경기 둔화 리스크가 있는 반면, 정작 물가가 잡힐지는 미지수여서다.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장은 “전례로 봤을 때 금리를 1%까지 올린다고 해도 수요를 자극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국제 유가 등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기업에 원가 상승 압력을 행사,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주된 요인인데 국내 금리 인상은 이 문제를 해소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타격이 큰 신흥시장에서 원자재 채굴이 제대로 안 돼 일어난 병목현상으로 원자재 가격은 급등세다. 이 때문에 외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국내 다른 스태그플레이션 유발 요인부터 정부가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 사회 취약계층 이자 부담 괜찮나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은은 금리를 올려야 하는 세 번째 이유로 급증한 가계부채와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금융 불균형을 꼽고 있다. 1분기 가계부채는 총 1765조원으로 해당 통계가 나온 2003년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 ‘영끌’ 트렌드를 금리 인상으로 자제시킨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그런데 이 같은 순기능보다, 이미 빚을 낸 가계가 큰 타격을 입는 역기능이 앞설 수 있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특히 6월 은행권 신규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81.5%로 2014년 1월(85.5%) 이후 7년 5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변동금리는 기준금리가 변할 때마다 변하는 금리다. 금리 인상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용 지표가 외형에 비해 내실이 좋지 못한 점도 우려를 낳는다. 4개월 이상 실업한 장기실업자의 경우 지난해 2월 대비 올 6월 26.4% 증가해 단기실업자 감소세(-15.5%)와 대비됐다. 또한 주 18시간 미만을 일한 초단기근로자가 6월에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한 사이, 36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는 3.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근로 환경이 열악한 저소득층은 계속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가뜩이나 빚이 많은 저소득층을 더 옥죄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 상당수가 투자가 아닌 생계를 목적으로 빚을 진 상황이다.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빚을 진 다중채무자는 지난해 말 423만6000명, 이들의 대출 규모는 520조원에 달했다. 자영업자들은 급한 마음에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에서도 돈을 빌린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층·저신용자인 취약차주로도 분류된다. 한은에 따르면 빚을 진 자영업자 중 취약차주 비중은 11%에 달한다.
 
4 집값 하락 효과는 미지수
 
한은이 대놓고 언급하진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한은에서 조기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는 또 다른 배경으로 집값 문제를 꼽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부동산 대책만 25차례 나왔음에도 집값 폭등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대국민 담화에서 “금리가 오르면 집값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금리 인상 카드를 집값 잡는 데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렇지만 극적 효과를 거두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반 가계대출에서 변동금리 비중이 훨씬 높은 것과 달리,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주택담보대출(LTV)에선 최근 고정금리가 인기다. 고정금리는 기준금리가 변할 때도 변하지 않는다. 기재부 등에 따르면 은행권 신규 LTV에서 고정금리 비중은 지난해 말 49.7%에 달했다. 2016년엔 43.0%였다. 당장 금리를 올려도 향후 수년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원장은 “과거 금리 인상은 단기간 집값을 낮춘 효과가 있었지만 이젠 제한적일 것”이라며 “과거보다 유동성이 주식·암호화폐 같은 다양한 분야로 몰렸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도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급격히 오른 전세가격에 ‘갭투자’가 다시 늘고 있다”며 “금리를 올려 전체 부채가 줄어든다고 해도 집값 하락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통화정책을 부동산 정책용 수단으로 삼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도 제기한다. 익명을 원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은 지금껏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했다”며 “돌변한 태도로 금리 인상 명분을 잃고 시장의 반발만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5 미국보다 빨리 올릴 필요 있나
 
미국은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기존 1~1.25%에서 0~0.25%로 대폭 낮췄고, 이제껏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 우려에 미 재무부나 연방준비제도(Fed)에서 금리 인상의 이전 단계인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 연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나오고 있다. 다만 금리 인상 시점은 2023년으로 사실상 확정한 상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6월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의 경제 여건은 (회복세에도) 금리 인상과 거리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의 인플레이션도 일시적이라는 게 지난달 Fed의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여러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1년 반가량 선제적 금리 인상으로 미국 통화정책의 속도를 앞질러도 괜찮은지, 실익이 있는지 물음표가 붙는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상이 기업·가계 부담에 따른 경제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에 맞춰 (한국도) 올리는 편이 성장률 제고 관점에선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