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53)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13일 출소한다. 9일 법무부 가석방심의위원회에서 가석방이 결정되면서다. 지난 1월 18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재수감된 지 207일 만이다.
이로써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지난 4년간 구속(2017년 2월)→석방(2018년 2월)→재구속(2021년 1월)으로 이어진 ‘총수 부재’라는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부회장 앞에 놓인 숙제와 걸림돌은 가볍지 않다.
9일 가석방심사위 의결…13일 출소 예정
2017년 시작된 ‘총수 부재’ 일정 부분 해소
미국 공장 등 ‘투자 시계’ 속도 빨라질 듯
재계선 “취업 제한 풀어야 한다” 목소리
미국 반도체 투자 속도 낼 듯
우선 당면 현안인 미국 투자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170억 달러(약 19조5000억원)를 들여 미국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텍사스주(오스틴‧테일러), 뉴욕주(제네시), 애리조나주(굿이어‧퀸크리크)가 ‘구애’를 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4개월째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 가석방의 근거 중 하나가 대규모 투자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인 만큼, 삼성이 이른 시일 내에 미국 투자를 결론 낼 듯하다”고 내다봤다.
지난 4년간 삼성전자 실적 정체·하락
이 부회장이 처음 구속된 2017년 이후 삼성전자의 실적은 정체 상태다. 지난해 매출은 236조8000억원으로 2017년(239조600억원) 대비 1.2% 줄었고, 영업이익은 32%나 쪼그라들었다.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이 있지만 반도체(DS)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각각 4.7%, 47% 감소했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T‧모바일(IM) 부문 역시 4년 새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6.6%, 3% 줄었다.
반도체 ‘세계 최초’ 타이틀 잇따라 내줘
파운드리에서는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TSMC는 2024년 2나노 양산을 위해 지금 수십조원을 쏟아붓고 있다”며 “삼성이 더 늦게 시작하면 아예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공세로 스마트폰 시장서도 고전
갤럭시S 시리즈의 흥행 부진으로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입지가 축소됐고, 카메라‧디스플레이‧배터리 기술도 사실상 중국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영진 쇄신, 새 노사관 제시도 주목
창업 회장부터 고수해왔던 무노조 경영을 이 부회장이 폐기한 만큼 노조와 관계 정립에도 나서야 한다. 그는 지난해 5월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12일 창사 후 처음으로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상반기엔 임금·성과급 지급 등에서 파열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어떤 노사관을 보여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 부회장이 새로운 성장 모멘텀 만들어야”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잃어버린 초격차를 회복하는 게 (이 부회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이를 통해 확실한 성장 모멘텀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업 제한으로 즉각 경영 복귀 어려워
다만 절차도, 심의도 까다롭다. 이 부회장 측이 취업을 승인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을 소명‧증명해야 하고, 특정경제사범관리위는 이 부회장의 업무가 ‘대체 불가능한지, 아닌지’ 심의해 이를 통과해야 한다.
3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지 이틀 만에 ‘삼성 경영위원회’를 소집해 산적한 현안을 챙겼다. 이후 3개월간 인공지능(AI)‧전기차‧전장 사업 논의를 위해 유럽과 캐나다‧중국‧일본 등지로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엔 취업 제한을 받지 않았다.
“일 하라고 풀어줬으면 일하게 해줘야”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이 부회장이 사면이 아닌 가석방 방식으로 기업경영에 복귀하게 된 점은 아쉽다”며 “향후 해외 파트너와 미팅, 글로벌 생산 현장 방문 등 경영 활동 관련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날 이 부회장 가석방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4월 시작된 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사건으로 다시 법정에 서야 한다. 프로포폴 투약 의혹 재판도 이달 중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