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힘든 세상일수록 사기꾼 득실, 실없이 웃는 사람 조심

중앙일보

입력 2021.07.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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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81)

얼마 전 유력 대선 주자가 대선후보 경선 연기 주장을 야바위꾼 속임수에 비유한 바 있다. “한때 가짜 약장수들이 기기묘묘한 묘기를 부리거나 평소 잘 못 보던 희귀한 동물을 데려다가 가짜 약을 팔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비판했다. 과연 그럴까. 지금도 현란한 사기술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감쪽같이 사람을 속이고 있다.
 
10여 년 전 독일 최고 부호인 BMW 그룹 상속녀(당시 46세)는 유명 휴양지인 티롤의 인스브루크 고급 호텔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곤 하는데,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깔끔하게 생긴 젊은 남성을 일주일 동안 지켜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코엘류의 『연금술사』가 주제였다. 꿈을 찾아 길을 떠나는 양치기의 여행을 통해 진정한 자아 탐색이란 무엇인지 등이 주제였다. 그는 스위스 정부의 국제 위기 대응 특수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에게 끌려 남프랑스와 뮌헨에서 두세 번 은밀하게 밀회를 즐긴다.
 

독일 최고 부호인 BMW 그룹 상속녀는 휴양지에서 만난 젊은 남성에 끌려 두세 번 은밀하게 밀회를 즐긴다. 하지만 그는 이후 돈을 요구하면서 본색을 드러냈다. 사기의 기술은 교묘하고 매력적이다. [사진 pxhere]

 
얼마 후 그 남자는 아들이 마이애미에서 교통사고를 냈는데, 하필이면 마피아 단원에게 중상을 입혀, 큰돈을 안 주면 죽인다고 협박을 한다는 것이다. 합의금은 750만 유로(한화 100억 상당)였다. 현금 상자를 비밀리에 건넨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 몇 배의 돈을 요구하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나는 잃을 것이 없지만, 당신은 좀 골치 아플 것이다. 밀회현장을 녹화한 테이프를 공개하겠다.” 사기꾼 제비에게 낚인 것이다. 그녀는 요구한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수사관 몇 명을 고용, 현장에서 그를 체포한다. 남편이 있는 세 자녀의 엄마였지만 과감하게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고 그자를 재판에 넘겨 6년형을 받게 한다. 밀회현장을 옆방에서 찍은 공범은 이탈리아 지글로(제비족)였다. 수사 결과, 그녀 외에도 유럽 최대 부호의 미망인도 똑같이 당했으나 쉬쉬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마저 사기꾼에게 당한 적이 있다. 개발되지 않은 원유층을 원격 기술로 탐지해낸다는 세기의 기술을 보유했다는 사람을 전직 총리로부터 은밀하게 소개받는다. 단 한 번의 비행으로 러시아 핵잠수함을 단번에 잡아낼 수도 있다는 이 기술을 경쟁국인 미국에 뺏길까 봐 노심초사한다. 당시 원유 가격이 치솟고 시추 비용이 엄청난데, 이 기술 하나면 프랑스의 에너지난 해소에 획기적일 것으로 봤다. 전제는 이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를 극소수의 인사들만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돈을 주면서 추진된 해저층 원유탐사는 3년이 지난 후에야 사기임이 밝혀졌다. 사기를 친 핵심 전문가 둘은 이탈리아의 전기 수리공과 벨기에 출신 남작이었다.
 
사기의 기술, 교묘하고 매력적이다. 무언가 간절하고 꼭 필요한데 그런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클수록, 그 제안은 매력적이고 기대 효용 때문에 가격은 치솟는다. 사람은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것에 본능적으로 현혹된다. 더구나 그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진다면, 기절하다시피 푹 빠져든다. 어리숙한 사람이나 판단이 흐려진 노인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여자 판검사가 유망한 벤처사업가와 결혼을 했는데, 완전 사기였다고 한다. 그래도 신분 때문에 숨기고 살고 있다는 루머가 있었다. 똑똑하다는 사람도 속수무책 당한다. 사기꾼일수록 말쑥하고 예의 바르고 은근한 미소가 매혹적이다. 데카르트를 낳은 이성적인 나라, 프랑스 대통령마저 감쪽같이 넘어가는 판이다.
 

어려운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혹세무민하는 선동에 솔깃한다. 사기꾼은 ‘검은 색안경 흰 장갑’을 낀 사람이 아니다. 친근하게 다가와 은근한 미소를 건네는 사람을 더 조심해야 한다. [사진 pxfuel]

 
보이스피싱의 고전은 자녀가 범죄에 연루되거나 납치됐다며 입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부모에게 ‘엄마 나 급해, 지금 바로’ 톤으로 급박하게 진행된다. 돈을 허겁지겁 보낸 뒤, 한참 지나서야 ‘아차’ 한다. 이 정도는 저급한 사기에 속한다.
 
고급 사기는 따로 있다. 속는 줄도 모르고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한다. 반값 아파트, 청년 무상복지, 빚에 쫓기는 사람들 부채 탕감 등등….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는 이런 구세주가 없다. 힘센 자, 부자, 기득권자에게 평소에 당하고만 살아 서민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믿는다. 이들 심금을 울리는 멋진 구호도 있다. “기회는 공정하게, 과정은 정의롭게, 결과는 평등하게.”이제는 세상이 달라지는구나 했을 것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경험해 보았는가.
 
어려운 세상일수록 혹세무민하는 선동에 솔깃해한다. 사기꾼은 ‘검은 색안경 흰 장갑’을 낀 사람들이 아니다. 친근하게 다가와 은근한 미소를 건네는 사람에게 더 많다. 효과 만점 희귀한 제품을 홍보 차원에서 잠시만 싸게 판다는 광고, 상대의 궁핍하고 간절한 상황을 이용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겠다는 제안, 대부분 거짓이다. 꾼은 먼 곳에 있지 않다. 팍팍한 우리의 일상에 쉽게 파고들어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한다. 정신 차리고 살자. 실없이 잘 웃는 사람, 특히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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