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새물 ‘콸콸’ 쌈박한 정치판…젊은 피에 기대해볼까

중앙일보

입력 2021.06.19 08:00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8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바꾼 인물은 한결같이 젊은 피였다. 1769년 8월 15일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섬에서 하급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후일 유럽 절대 왕정 시대를 허물고 유럽 근대사를 다시 쓰게 한다. “천재적인 인물은 자신을 불태워 세기를 밝히는 유성이다.” 스스로 미래를 예견한 것이었을까, 초급 장교 시절에 그가 쓴 글이다. 그는 파죽지세로 유럽을 평정한 다음 프랑스 혁명에 성공한다. 이에 불안해진 유럽 왕들은 한자리에 모여 동맹을 맺었다. 특히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에스파냐의 왕들이 프랑스를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프랑스는 너무 위험한 나라가 되었소. 우리끼리 손잡고, 프랑스를 무너뜨립시다!”
“그렇소. 인민들이 프랑스 혁명을 흉내 낼까 두렵소.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들도 루이 왕처럼 최후를 맞을 것이오.”

그가 원정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를 정복한 것이 27세 때다. 곧이어 오스트리아 빈을 점령하고 가는 곳마다 승리하여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0년 뒤인 1799년, 30 중반의 나이에 프랑스 대통령으로 추대된다. 작은 섬 출신 시골뜨기가 절대왕정 시대의 유럽을 끝내고, 자유·평등·박애를 기치로 한 민주 공화정으로 탈바꿈하는데 출발점 역할을 한 것이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원정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를 정복한 것이 27세 때다. 10년 뒤 그는 30 중반의 나이에 프랑스 대통령으로 추대된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원정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를 정복한 것이 27세 때다. 10년 뒤 그는 30 중반의 나이에 프랑스 대통령으로 추대된다. [사진 Wikimedia Commons]

2017년 5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군소 정당의 대통령 후보, 에마뉘엘 마크롱이 39세의 나이로 25대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된다. 프랑스의 전통 거대 양당, 사회당이나 공화당 출신도 아닌, 급조된 군소정당 출신이었다. 그를 당선시킨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인에 넌더리가 난 프랑스 유권자였다. 단 한 번도 선거에 출마해본 경험도 없었지만, 그가 이끈 정치 운동 ‘앙마르슈(전진)’는 빠르게 지지자를 끌어모았다. 부패한 정치에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경제개혁에 관한 공약을 내세웠다. ‘반이슬람, 반이민, 프랑스인 먼저’를 주창하고 양극화한 프랑스 정치를 중도로 끌어오려 애썼다. 그는 행정 경험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천재들이 입학하는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후 2004년 재무부 금융조사관으로 공직을 시작했고, 2011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경제보좌관, 2014년 경제 산업부 장관으로 2년간 일했다. 그가 24년 연상의 여선생님과 결혼한 것도 화제였다.

이런 예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확 바꾸는 변화는 젊고 어린 영웅들이 만든 경우가 많다. 알렉산더 대왕도 부왕이 암살당하자 20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주변 국가를 정복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만들었다. 정벌을 위해 떠날 때도 항상 책을 끼고 다녔고, 전술·문화·행정을 배우려는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번에 국민의 힘, 당 대표 선거에 이준석 후보가 36세의 나이로 당선되었다. 경선 초기에는 보수정당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친구가 나왔다고 빈정댔다. 그러나 갈수록 그의 돌풍은 거셌다. 경륜을 강조한 다른 후보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제 몫만 챙기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는 사실이다. 세칭 이대남 현상이라 불리는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집값 폭등, 치솟는 청년 실업 등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청년들을 ‘청년=철없는 자’로 치부했다. 그들은 부모 세대처럼 이삼십 년 후에 중산층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절망이 가상화폐까지 손대게 만들었다. 이렇게 생존이 위협받는 데, 86세대 기성 정치인은 진보·보수를 불문하고 “백만 원 줄게, 이백만 원 줄게”하는 얍삽한 공약으로 분노를 더욱 키웠다. 청년 대책이란 것이 마치 거지에게 돈 몇 푼 던지듯 하면서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은 실효가 없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9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를 당선시킨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인에 넌더리가 난 프랑스 유권자였다. 로이터통신=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9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를 당선시킨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인에 넌더리가 난 프랑스 유권자였다. 로이터통신=연합뉴스

그 사이 수락산 밑에서 세 번 연속 낙선하면서 눈물 젖은 빵을 삼킨 청춘 이준석이 등장한 것이다. 기성 정치의 벽에 막혀 절망했던 그의 등장이 2030에 폭풍 같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50~60대가 자신들의 가부장적 시각과 충돌하는 진보적인 사고방식에 화를 내는 것을 ‘브로프레이크(broflake)’라 한다. 그런 꼰대들 사고방식에 질려버린 것이다. 나이든 경쟁 후보들이 경험과 경륜을 앞세웠지만 허망하게 대패한 것은 이와 같은 낡은 프레임이었다. 과학고, 하버드의 스펙이라면 좋은데 취직해 편하게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치에 젊은 나이에 입문한 것이 잘한 것인지는 모르나, 그것도 그의 운명일 것이다.

그의 출현으로 위선과 타성에 젖은 정치판이 환골탈태하기를 바란다. 절망하는 젊은 청춘들 소리 없는 외침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가능하다면 확 갈아치우고, 새로운 물이 콸콸 흐르는 쌈박한 정치판, 보고 싶다. 몇 년 전, 어느 지방의 초청 강연에 그와 함께 참석한 뒤, 기차를 같이 타고 온 적이 있다. 그때의 씩씩하고 초랑초랑했던 그 눈망울이 변하지 않고, 미래를 거침없이 혁신해나가고, 담대하고 당찬 인물로 커나가기를 기대하고 또 응원한다.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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