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공대 영어 약칭 ‘켄텍’ tech 붙인다고 일류 될까

중앙일보

입력 2021.07.03 00:21

수정 2021.07.03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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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글리시 인문학

“국가의 참혹한 화가 지금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여위고 쇠약한 백성에게 부역을 시키고 국맥을 상하게 하니 앞으로 다가올 근심과 환란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병들 기미를 본 이상 도저히 침묵을 지키지 못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 올리나니 말한 죄 달게 받겠습니다.”
 
직언으로 공직자의 사표가 되고 있는 율곡 이이(李珥)는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자 두려움 없이 임금께 상소를 올렸다.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한 힘은 삼봉 정도전의 정치사회개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몇 가지를 보자. 첫째, 왕은 경연(經筵)에 나가서 학문을 토론하고 정치를 의논해야 한다. 경연은 하루 세 차례 아침·점심·저녁 신하들과 2시간씩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둘째, 각 관청의 관리들을 만나서 고충을 듣고 해결책을 강구토록 했는데 이러한 현장점검을 윤대(輪對)라고 불렀다. 셋째, 각계에서 왕에게 올린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여기에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언론 3사를 두어 왕의 실정이나 과오를 바로잡도록 했고, 가장 중요한 인사문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검증토록 하였다. 전자를 간쟁(諫諍)이라고 하고 후자를 논박(論駁)이라고 한다.

궤도 오르려면 적어도 30년 걸려
무리한 강행 ‘돈 먹는 하마’ 우려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는 직언·진언을 제대로 한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정책이 산으로 올라가도 직을 걸고 “아니 되옵니다”라고 바른 소리를 내는 이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9명이 청와대 초청을 받아 국정의 난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진언할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진이나 찍고 밥 먹다가 끝났다. 어쩌다 반대 의견을 내놓아도 청와대가 “시끄럽다”고 한마디 하면 하루아침에 소신을 바꾼다. 자리 보존이나 영전을 위해서는 이견은 금물이다.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빗나간 주택 폭정, 코로나 지원금 살포 등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 정책이 줄줄이 나와도 “그렇습죠”라고 되풀이하는 사람들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후보 공약이라는 이유로 기어코 한전공대를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속칭 문재인공대다). 3년 뒤면 대학 진학자가 10만 명이나 줄게 돼 대학의 4분의 1이 문을 닫아야 할 판에 건물 하나 없는 전남 나주의 허허벌판 캠퍼스에 9월이면 신입생을 뽑는다.
 
아무리 좋은 인재와 교수진을 갖춰도 대학이 궤도에 오르려면 적어도 30년이 걸린다. 서울대 공대 등 유수한 대학을 무력화시키면서 부채 132조원의 한전이 앞으로 이 대학에 10년간 1조6000억원의 사업비를 쏟아부어야 한다. 포스코의 포스텍도 경영이 어려워 국립대학 전환을 꾀하고 있다. 돈 먹는 하마를 만드는 데 앞장선 공직자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문재인공대의 정식 이름은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인데 영어 약칭은 켄텍(Kentech)이다. 칼텍과 조지아텍 덕에 technology의 약자 tech이 기술공학컴퓨터대학을 뜻하지만 tech을 붙인다고 일류가 되지는 않는다. “Kentech은 지역이기주의와 영혼도 국가관도 없는 관료들 그리고 얼빠진 한전 경영자의 합작품”이란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