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용접공 신화' 총리도 부동산 추락…복지천국의 그늘

중앙일보

입력 2021.06.22 15:52

수정 2021.06.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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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에 대한 의회 불신임안이 통과됐다. 현직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 가결은 스웨덴 역사상 처음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인 용접공에서 일국의 총리 자리까지 올랐던 스웨덴의 자수성가 신화, 스테판 뢰벤(64) 총리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스웨덴 의회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총리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총리 불신임안이 통과된 건 스웨덴 사상 최초다. 입지전적 인물 신화인 그는 어쩌다 곤경에 처하게 됐을까. 답은 부동산 임대료 규제 문제다. 한국뿐 아니라 복지 천국이라는 북유럽의 스웨덴에서도 부동산은 뜨거운 감자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스웨덴 의회는 의원 349명 중 반수 이상인 181명 찬성으로 뢰벤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영국 가디언은 “뢰벤 총리는 일주일 안에 사임하고 의장에게 새 정부를 꾸리는 일을 넘기거나, 조기 총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뢰벤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 가결을 위해 소집된 스웨덴 의회. AP=연합뉴스

 
뢰벤 총리의 위기는 스웨덴 좌파당이 그의 부동산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시작됐다. 지난 2018년, 뢰벤 총리가 소속된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사민당)은 녹색당과 현 연정을 구성했지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중도당과 자유당, 좌파당 등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중 좌파당이 최근 새로 추진되는 부동산 정책을 이유로 연정 지지를 철회했다.
 
미국 ABC 뉴스는 “뢰벤 총리가 주택 공급 부족과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임대료에 대한 규정을 손보려다가 불신임당했다”고 전했다. 지난 1978년 스웨덴에선 주택 임대업자와 세입자 대표 단체와 합의해 임대료를 제한하는 임대료 협상법이 제정됐다. 이후 임대료 인상률은 매년 1% 내외로 통제돼왔다.


누시 다고스타 스웨덴 좌파당 대표가 스테판 뢰벤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 투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 법은 스웨덴을 ‘세입자의 천국’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주택 소유자들의 이익은 제한됐다. 새 주택을 지어도 이윤이 얼마 남지 않자 주택 임대회사나 건설사들은 점차 주택 공급을 거부했고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사민당은 이를 막기 위해 신규 아파트 등에 대해선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내놨지만, 좌파당은 “주택 소유자들만 배 불리게 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좌파 계열이 분열하는 틈을 타 극우 성향의 스웨덴 민주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뢰벤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상정했다.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직면한 뢰벤 총리는 지나온 삶 곳곳에 굴곡이 많았다. 생후 10개월 만에 고아가 됐다가 벌목공 노동자 집안에 입양돼 성장했다. 학창시절 용접 등 기술을 배웠고, 우메오대에 진학했지만 1년 반 만에 그만두고 용접공이 됐다. 이외에도 우체부·벌목공·공장 노동자 등으로 다양한 직군에서 일했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과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가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 만찬장에 입장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중앙일보 강정현 기자]

 
정계 입문은 95년 스웨덴 금속노조에서 활동한 게 계기가 됐다.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을 거쳐 2005년 위원장 자리에 오른 그는 노조를 넘어 정계 진출을 꿈꾼다. 2007년 사민당 복지정책 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 정치에 입문했고, 2012년엔 사민당 당수로 추대됐다. 2014년 스웨덴 총리의 자리에 올라 2019년 연임을 거쳐 7년째 재임 중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오랫동안 과반 정당 없이 연합 세력이 집권해온 스웨덴에서 뢰벤 총리는 다른 정당과 잘 협력하는 정치인으로 두각을 발휘했다. 그는 연금, 미래 에너지, 안보 등 분야에서 뜻이 맞는 다른 정치 세력과 힘을 합쳤다. 지난 2019년 한국·스웨덴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아 방한하기도 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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