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
처음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지금도 회자하는 ‘불후의 유행어’다. 2004년 KBS2 개그 프로그램 ‘폭소클럽’에서 ‘스리~랑카에 온 블랑카(정철규 분)’는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에서 겪는 낯선 삶을 재치와 풍자로 풀어냈다.
[키워드] 중소기업 ‘유급휴가’ 딜레마
주요 대기업 코로나 백신 ‘1+2일 유급휴가’
같은 울타리 쓰는 협력업체 “상당히 난감”
국회는 대체공휴일 확대 방안 논의 중인데
현장선 “상처 받고 피해 보는 사람 늘 수도”
아무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무시, 불편한 시선을 꼬집으면서 “사장님 나빠요”라고 내뱉는 한마디는 여전히 여운이 짙다.
그런데 요즘 중소기업계에서 블랑카가 ‘소환’되고 있다. 엉뚱하게도 코로나19 유급휴가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등 굵직한 기업들은 백신 유급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대개는 접종 당일 하루, 이상 증상이 있으면 추가로 1~2일을 더 주는 식이다. 요즘 직장인 사이에선 “백신을 맞으면 ‘1+2일 유급휴가’가 생긴다”는 인식이 생겼다.
삼성전자는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가장 앞선 지난달 12일 백신 유급휴가를 도입했다. 이 회사는 사내게시판을 통해 ‘백신 접종 당일 하루 유급휴가를 제공하고, 이상 반응이 있을 경우 추가로 이틀 유급휴가를 준다’고 공지했다. 의사 소견서 같은 증빙 서류가 없어도 휴가를 연장할 수 있다.
“급여 달라도, 대우는 같게 해 달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이 문제는 예민하게 등장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목소리는 간단하다. “삼성전자는 (백신 접종 후) 사흘 쉬는데 우리는 왜 아직 공지가 없나? 동일한 급여는 아니어도, 동일한 대우는 해 달라.”
협력업체로선 인건비가 걱정이다. 삼성전자 협력사에 근무하는 인사·지원 담당 임원 A씨가 중앙일보에 전한 고민을 요약하면 이렇다.
“다음달 국가기간산업 종사자에 대해 접종을 앞두고 직원들 눈치 보는 중이다. 유급휴가로 최소 하루는 줄 방침이다. (유급휴가가) 하루면 전체 인건비가 4~5%쯤, 사흘을 주면 10% 이상 늘어난다. 이렇게 공지하면 ‘삼성은 사흘 쉬는데, 왜 우리는 하루냐’는 불만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삼성처럼) ‘1 2 유급휴가’를 주면 적자가 날 수도 있다. 연간 단위 계약이라 삼성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 얘기를 블랑카 버전으로 옮기면, 봉급쟁이는 “사장님 서운해요”, 사업주는 “‘빨간 날(유급휴일)’ 부담돼요”인 셈이다.
정부에서도 ‘휴일 양극화’ 우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오는 광복절부터 시행되도록 속도를 내겠다”며 “국민의 휴식권을 보장하면서 내수 진작 효과가 있고, 또 고용을 유발하는 윈윈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국민 여론도 70% 이상 찬성(서영교 민주당 의원)이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광복절이 토요일이어서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경우 소비 유발 2조원, 고용 증가 3만6000명이 기대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현재는 정부가 난색을 보이면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정부는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유급휴가를 적용하지 않는다. 대체공휴일법에선 일괄적으로 휴무일을 지정해 충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직장인 사이에서 ‘휴일 양극화’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으로선 대체공휴일에 출근하면 휴일근로수당(통상임금의 150%)을 지급해야 한다. 국회는 오는 22일 법안소위를 다시 열어 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다시 A씨의 얘기다. “기업 부담도 부담이지만, 휴일 때문에 상처받고 피해받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고려했으면 한다.”
이상재 산업2팀장 lee.sangja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