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매년 주는 기본소득…스위스는 투표로 부결시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16 05:00

수정 2021.06.16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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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의 해외 사례를 두고 소위 '알래스카 설전'을 벌였다. 이 전 대표는 지난 2월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뒤 기자들에게 “(미국) 알래스카를 빼고는 그것을 하는 곳이 없다”며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흘 뒤 이 지사는 자신의 SNS에서 “K-방역처럼 정책에서도 우리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며 “다른 나라가 안 하는데 우리가 감히 할 수 있겠냐는 사대적 열패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트위터 캡처

 
이런 ‘알래스카 설전’은 기본소득 찬반론이 충돌하는 대표적 예다.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을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이 전 대표의 “알래스카만 한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세계 39곳 실험 완료, 17곳 진행 중
캐나다 온타리오, 예산부족 중단
핀란드 실험선 취업 의욕 차이 없어
나미비아선 어린이 영양실조 줄어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기본소득 연구소(BIL·Basic Income Lab)는 기본소득은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현금 ▲개인을 갖춰야 한다고 정의한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해야 기본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에게만’ ‘지역 화폐로’ 주는 등의 방식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완벽한 기본소득'은 지구 상에선 미국 알래스카 주의 ‘영구기금배당(Permanent Fund Dividend)’뿐이다. 알래스카 주는 1982년부터 거주 기간이 1년 이상인 모든 주민에게 배당금을 주고 있다. 알래스카의 석유 등 천연자원을 판매한 수입 일부로 조성한 기금을 운용해 수익금을 주민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운용 실적에 따라 매년 100만~200만원대의 기본소득이 지급됐다. 부존 자원이 있고 인구가 적은 특수한 조건이 있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기본소득 연구소 홈페이지에서는 전 세계 기본소득 실험의 진행 상황을 볼 수 있다. [스탠퍼드대 기본소득 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기본소득을 본격 시행하고 있는 곳은 알래스카외엔 없다 해도 제한적인 기간과 범위 내에서 실험을 했거나 실험이 진행 중인 곳은 많다. 스탠퍼드대 기본소득 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39곳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완료됐고, 17곳에서 진행 중이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청년기본소득, 농촌기본소득도 '진행 중인 기본소득 실험'에 포함됐다. 기본소득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는 정책도 '실험'으로는 인정받는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기본소득 연구소에는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제가 진행 중인 기본소득 실험으로 소개돼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기본소득 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이 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핀란드가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기본소득 실험이다. 중도우파 성향으로 정권을 잡은 중도당(Centre Party)은 실업률 상승을 해결하기 위해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임시직이라도 일단 취업을 하면 받지 못하는 실업수당과 달리, 취직을 해도 기본소득을 준다면 취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란 예측에 기반했다.
 
핀란드 사회보험국은 2017~2018년 2년간 25~58세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매달 약 74만원을 줬다. 이들에겐 "취업을 하더라도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약속을 붙였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받은 이 그룹과 실업급여를 받은 실업자들을 비교해 봤더니 두 그룹 사이의 취업 비율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다수 전문가는 이미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풍족한 복지제도가 있는 스위스에선 2016년 기본소득 도입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쳤는데 77%가 반대해 부결됐다. 기본소득을 받기 위해 기존의 복지제도를 축소하거나 세금을 인상하는 것에 반대가 컸고, 대다수 복지제도가 잘 된 국가의 고민처럼 이민자가 급증할 수 있다는 점도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기본소득제 해외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재원 마련에 실패해서 기본소득 실험을 중단한 사례도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2017년 저소득층 4000명에게 3년간 매달 약 115만원을 주는 실험을 계획했다. 대신 다른 복지제도를 중복해서 받을 수는 없었다. 기본소득과 다른 복지제도의 효과를 비교하려는 실험이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1년 만에 중단됐다.
 
복지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빈곤율이 높은 나라에선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제도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는 국가 나미비아에선 2008~2009년 마을 주민 930명을 대상으로 매달 약 7000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재원은 NGO 모금을 통해 마련했다. 실험 결과 어린이 영양실조가 줄고 기본소득을 제외한 평균 소득이 증가했다. 하지만 재원 조달과 기간, 범위가 모두 한정적이었다는 한계가 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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