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文, 어부 2명 살인죄라며 북송…北은 정작 탈북반역 처형"[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01 00:34

수정 2021.06.0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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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 북한인권단체총연합 상임대표와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 평양 전경을 담은 그림 앞에서 만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인권이 진정한 통일 운동이라고 공감하면서, 중단없이 북한인권운동을 해나가자고 다짐했다. 장세정 기자

북한인권운동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주민과 3만 4000명 탈북자의 인권 상황이 오히려 나빠졌다고 호소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부 때보다 인권운동이 활발하다.최근엔 '남남북녀 지식인'이 북한인권운동 단체의 수장으로 잇따라 취임했다. 김석우(76)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과 이애란(57) 북한인권단체총연합 상임대표다.
 김 이사장은 경기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외무고시 1회로 공직에 진출해 아주국장 등을 역임한 정통 엘리트 외교관 출신이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시기에 통일원 차관(1996년 8월∼1998년 3월)으로 발탁되면서 북한이탈주민지원법을 제정하고 탈북자 수용 시설인 하나원을 처음 만들었다.  
 이애란 상임대표는 평양 출신 탈북자다. 조부모가 월남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바람에 10세 무렵 양강도로 강제 추방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의주경공업 대학 식료공학부를 졸업했다. 1997년 아버지·남동생과 함께 생후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아들을 업고 압록강을 건넜다. 학구열이 강해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탈북 여성 1호 박사'다. 2010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으로부터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받았고 2012년 북한 음식 전문점(능라밥상)을 열어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 이사장이 차관 시절 이 상임대표가 탈북한 인연이 있는 두 사람은 1999년 북한인권시민연합 연말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올 초엔 북한인권운동 NGO 단체를 이끄는 단체 수장을 나란히 맡아 '같은 길을 걷는 동지'가 됐다. '방북 1호 화가' 황창배 화백의 평양 시내 전경 그림 앞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힘들 때 북한인권운동 단체를 맡았다.

[북한인권운동 손 잡은 '남남북녀']
나란히 NGO 수장된 김석우·이애란
탈북 청년 2명 북송은 생명권 침해
북한인권 외면하는 대북 정책 반대
정책 실패 책임, 탈북자에 전가해
탈북자 성공 보여줘야 통일 빨라져
북한인권운동이 진정한 통일운동

 ▶김석우=우리가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인권이 보장되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북한인권운동은 통일 운동인 셈이다. 인류사는 인권이 발전해온 역사다. 인권 운동은 우리가 절대 지지 않고,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다.
 ▶이애란=북한 정권은 300만명을 굶겨 죽였다.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갈 상황에서 쥐약을 들고 탈북했다. 감옥을 먼저 탈출한 사람으로서 의무감이 있다. 우리가 외면하면 북한 주민을 누가 기억이라도 해주겠나.  
 -지난 4년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보나.
 ▶김=북한 편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 정권의 안위를 최우선 고려했다. 반면 북한 동포의 인권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독재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심각하게 걱정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였나.  
 ▶김=헌법상 우리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를 제기해 달라고 촉구했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이=대한민국 공무원이 서해에서 피살됐다. 헌법상 북한 주민도 국민인데 탈북 청년 어부 2명을 비밀리에 강제 북송해놓고도 살인마로 단정했다. 헌법상 국민의 생명권이 침해됐으니 대통령이 총체적 책임을 져야 한다. 대북전단을 날린다고 탈북자에 대한 혐오 감정을 부추겼다. 대북 정책 실패 책임을 탈북자들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최근 관훈토론회에서 2019년 11월 북한 어부 2명이 16명을 살해했는데 탈북 의도가 분명하지 않아 송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애란 상임대표는 "탈북자에게 없는 죄도 뒤집어씌우는 북한이 살인죄 언급 없이 탈북자에게 적용하는 '조국 반역죄'를 이유로 어부 2명을 처형했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 정 장관은 국가안보실장 시절 대북 정책을 주도해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탈북자를 홀대했다는 말인가.
 ▶이=친정부 매체들이 탈북자를 비난하는 여론을 퍼뜨렸다. 탈북자를 소외시키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직장에서 밀려나고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려 자살도 많이 했다. 심지어 탈북 여성 한성옥(42)과 김동진(6) 모자는 서울에서 굶어 죽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탈북자도 적지 않다.
 ▶김=탈북자를 배신자로 불신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탈북자를 도와주면 정권에 밉보여 세무조사 받는다는 말이 파다해 눈치 본다. 정부가 탈북자를 싫어한다는데 어떤 공무원이 나서겠나.  
  -지난 4년간 잘한 대북 정책도 있을텐데.
 ▶이=김정은을 하노이로 불러내 북·미 담판을 했지만 실패하는 바람에 톡톡히 망신당했다. 북한 지배층에서 김정은의 우상화와 신격화가 타격받았다고 한다.  
 ▶김=망신준 게 아니라 김정은의 국제적 지명도를 오히려 올려줬다고 본다.
 -욕설을 참은 대통령에겐 '깊은 뜻'이 있지 않겠나.
 ▶김=남북 이벤트로 국내 정치에 이용했지만,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신중하고 전략적인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이=힘 있는 사람이 참는 것과 비겁한 사람이 굴복한 것은 다르다. 국민의 자존심을 추락시켰다.
 화제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으로 옮겨갔다. 공동성명에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협력하고 가장 어려운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것을 약속한다"고 명시했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 인권 문제가 올랐다.
 ▶김=정상회담에서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 같다. 한국 정부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이=구체적인 대책들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세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희망 고문'만 남긴 채 실질적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앞서 미 의회 인권위가 대북전단 금지법 청문회를 열었다.
 ▶김=우리 인권이 일본·중국·북한보다 앞서갔는데,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없던 인권청문회가 열렸으니 기가 찬다.


이애란 북한인권단체총연합 상임대표와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 평양 전경을 담은 그림 앞에서 만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인권이 진정한 통일 운동이라고 공감하면서, 중단없이 북한인권운동을 해나가자고 다짐했다. 장세정 기자

 탈북자들은 생계난을 겪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 고위직 탈북자들이 대거 쫓겨났다고 한다.  
 -대사급 탈북자들이 '백수' 신세라던데.      
 ▶이=황장엽 선생과 같이 탈북한 김덕홍 선생의 고문료를 끊었다. 거동도 불편하니 굶어 죽으란 얘기다. 탈북자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데, 낚시터조차 제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죽을 때까지 낚시하는 법만 배우란 것인가.  
 ▶김=북한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면 국익에 반하는 거다.  
 -통일부가 도와주지 않나.
 ▶이=이민사회인 미국에 가서 보니 정착 정책의 주인은 공무원이 아니라 이주민이었다. 단순 지원이 아니라 자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한국에 온 지 24년 됐는데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는 통일부가 있어서 통일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치적으로 뒤틀리지 않으려면 남북하나재단도 정치인이나 통일부 관료를 재단 이사장에 임명하면 안 된다.  
 ▶김=지금 통일부는 장관부터 이념편향이 보이고 북한 정권 눈치 보기 바쁘다. 그 밑에서 통일부 직원들이 북한 동포의 인권과 탈북자 보호 업무를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임기 1년 남은 정부에 당부할게 있다면.
 ▶이=2016년 3월에 통과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문 대통령은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켜야 한다.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탈북자들의 양심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은 당장 폐지해야 한다.
 ▶김=중국과 러시아 등지로 넘어간 탈북자들이 오도 가도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속히 데리고 와야 한다. 탈북자들이 한국 땅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여줘야 통일도 빨리 올 것이다.
 -앞으로 어떤 활동에 주력할 것인가.
 ▶김=한국 정부는 지난 3월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3년 연속 빠졌다. 이번 결의안에 국군포로 문제가 처음 삽입되는 과정에 '피 묻은 북한 석탄' 보고서를 만든 우리 단체 간사들이 크게 기여했다. 국제사회와 함께 탈북자와 북한인권 보호를 위해 계속 공조할 것이다.
 ▶이=탈북 청년 어부 2명 강제 북송 이후 북한주민 사이에서는 '탈북하면 북으로 돌려보낸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힐 것이다. 대북 전단을 살포한 박상학 대표가 핍박받는데 '내가 박상학이다'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남한에서 감옥에 가더라도 북한인권운동을 멈출 수 없다.
  
 북한인권운동은 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으로 활동해온 고 윤현(1929~2019) 목사가 1996년 북한인권시민연합을 만들면서 광야에 불씨 하나를 던졌다. 지난해 출간된『윤현-인권의 수레바퀴를 돌리다』에는 윤 목사가 소개한 일화가 실려 있다. 나치에 끌려가던 어느 목사가 "유대인이, 가톨릭 신부들이 잡혀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잡아가느냐"며 나치에게 항의했을 때 목사에게 양심의 소리가 울렸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것이 바로 죄야." 북한 동포가 고통받고 '미리 온 통일'이라는 탈북자들이 고통받는데 그들을 외면하거나 침묵한다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북한인권운동을 시작한 고 윤현 목사(전 북한인권운동시민연합 이사장) 1주기를 기념해 발간된 '윤현-인권의 수레바퀴를 돌리다'. 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을 지낸 윤 목사는 생전에 양심과 정의를 역설했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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