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문경 ‘화수헌’
1막 고자재로 해체될 뻔한 200년 된 한옥
카페로 변한 양파밭 옆 고택
무너져 내려 집 해체될 위기 처해
문경시서 매입, 리모델링 후 활용
청년 다섯 명 팀 꾸려 카페 열어
입소문 타고 서울·경기서 몰려와
지방 빈집 소생 보여준 성공 사례
지난달 22일 화수헌을 찾았다. 화수헌은 산양면 현리에 있다. 대체 이렇게 가다가 뭐가 나오긴 할까 갸우뚱하게 하는, 드넓은 양파밭 옆 마을 입구에 난데없이 있다. 마을에는 40명이 산다. 이런 동네에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 8만 명이 찾았다.
화수원은 인천 채씨의 집성촌이던 동네 입구에 있다. 1790년에 지어졌으니 올해로 230살이다. 소멸하는 도시에서 사람은 떠나고 공간은 방치된다. 한옥도 수십 년 전 그렇게 됐다. 개인 소유의 집이었지만 집주인은 떠났고, 오가며 살피는 관리인이 있었지만 사람 살지 않는 집의 끝은 뻔했다.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살던 사람이 떠나고 집이 무너져버리면 역사는 통째로 사라져버리잖아요. 우리나라가 해외보다 취약한 것이 이야기이고, 그 지역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옛 공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도원우(29), 김이린(31)씨는 90년대생 부부다. 대구가 고향인 도씨는 대학 재직 중 보험 영업에 뛰어들었고, 부산이 고향인 김씨는 일본 도쿄의 정보통신(IT) 회사에서 일했다. 도씨는 “일을 꽤 잘했지만 5년 차에 탈진했고,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됐다”고 말했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던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결혼 후 할 일, 정착할 곳을 찾고 싶었다.
2막 폐가에서 어떻게 핫플이 됐냐면
경북도 내 어디든 자리 잡으면 됐다. 리플레이스 팀은 도내를 6개월간 샅샅이 훑고 다녔다. 번듯한 곳을 찾기엔 자금 여유가 없었다. 폐교, 폐기차역, 폐가를 둘러봤다. 버려진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다 만난 것이 문경시의 화수헌이었다. 도 대표는 “외지인에게 배타적이었던 다른 곳과 달리 마을 이장님과 문경시가 정말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하셔서 산양면 현리에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상권은 하나도 없지만, 문제없다고 봤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SNS 홍보에 집중하기로 했다.
카페를 열자고 했지만, 팀에서 이런 일을 해 본 사람은 없다. 문경시에서 화수헌을 어느 정도 리모델링을 했지만, 카페로 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보험 영업맨이었던 도씨는 공간기획 전문가, 프랜차이즈 카페 사업가 리스트를 뽑아 찾아다녔다. “거절당하면 다른 데 또 부탁하면 된다”며 부딪혔고, 배웠다. 소품을 어떻게 배치하면 되는지, 공간을 어떻게 꾸미면 되는지 알게 됐다.
무엇을 팔지는 리플레이스팀이 연구해 개발했다. 마을의 농산물과 지역 특산물을 직접 가공해 식음료를 만들고, 세세하게 스토리텔링 했다. 문경산 8곡을 방앗간에서 빻아 만든 미숫가루, 문경 동로면의 청정한 오미자밭에서 딴 오미자로 만든 오미자 에이드…. 흔한 재료에 청년의 감각을 입혔다. 도씨는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러기 위해 마을과 경제적 상생을 하자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양파밭 옆 한옥 카페는 입소문을 서서히 탔고, 평일에는 50~100명, 주말에는 최대 800명까지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방문객의 30% 이상이 서울·경기에서 온다. 그새 직원 수는 다섯에서 13명이 됐다. 늘어난 식구 8명 중 2명은 서울, 6명은 문경 출신이다. 직원 이승환(23)씨는 “서울의 삶에 메리트가 있을까 생각이 들던 차에 지방에서 일해보고 싶어 내려왔다”고 말했다.
운영하는 공간도 늘었다. 산양면의 옛 양조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산양정행소’, 1940년대 금융조합사택(적산가옥)이었다가 사진 스튜디오로 쓰는 ‘볕드는 산’ 등이다. 모두 방치됐던 문경시의 유휴공간이다.
3막 지자체의 SOS
리플레이스가 문경시에서 자리 잡고 있을 무렵, 숙박서비스업 스타트업인 H2O호스피탈리티의 이웅희 대표는 지자체의 SOS를 여럿 받고 있었다. 이 대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토대로 호텔 운영을 자동화·무인화하는 플랫폼을 개발해 고정비를 절감하는 서비스로 일본에서 성공했다.
일본 최대 여행업체인 라쿠텐의 ‘라이풀 스테이’(객실 3800개)를 현지에서 위탁 운영하다 그중 폐가나 다름없던 고택을 숙박시설로 리모델링해 운영하던 것이 국내에 알려졌다. 이 대표는 “지자체에서 관광객용 한옥마을을 만들어놨다가 방치하거나 지방소멸로 골칫덩이가 된 고택을 대신 관리해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우리가 직접 이를 맡기엔 역부족이라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리플레이스를 알게 됐고, 만났고, 최근 인수했다.
두 회사는 지역의 방치된 고택과 한옥마을에 이야기를 입히고, 기술력을 더해 운영해나갈 참이다. 현재 경북 영양군 서석지 일대의 고택과 산촌마을의 초가집 여러 동의 공간기획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방의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세련되게 발굴해 이야기를 엮으면 젊은 층이 분명 반응할 거라고 확신한다”며 “리플레이스가 문경을 시작으로 소멸 지역 곳곳에 ‘로컬크리에이터’를 키우고 거점을 만들어 연결해 나가면 소멸하는 지방에도 소생의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수헌의 가능성을 처음 발굴한 엄원식 문경시 문화예술과장은 “지방의 남겨진 공간들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고, 빈집 수준을 넘어 빈 마을이 생기는 지경”이라며 “적어도 동네의 기준이 될만한 공간은 살려서 이야기와 문화 정체성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수요와 공급이 잘 만난다면, 소멸지역은 청년을 만나 위기에서 벗어날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