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강화돼도 되풀이되는 가정폭력 비극
경찰이 가정폭력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 이후 만들어진 것이었다. 강서구에서 접근금지명령을 어기고 전처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한 달 만에 정부는 여성가족부·법무부·경찰청 등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경찰이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해 현행범을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하고, 접근금지 명령을 어겼을 경우 기존에 과태료에 불과하던 제재 수단을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 수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과거에 머무르는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
전문가들은 법이 강화됐음에도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 등 수사당국의 인식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했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가정폭력처벌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경찰들이 개정안을 숙지하지 못해 현장에서 피해자들이 안내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경찰이 가해자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경찰의 소극적 행정을 개선하고자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현행범 체포 등의 조항을 넣었음에도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은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기 쉬워”
지난 3월에 발표된 ‘2020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총 상담 건수(3만9363) 중 가정폭력 상담은 40%(1만755건)를 차지했다. 이 중에는 경찰·검찰·법원에 의한 2차 피해에 대한 상담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가정폭력으로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에게 경찰이 “잘 해결하세요. 말로 좋게 해결하세요” “남편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마세요” “별것도 아닌 일로 그런다” “그냥 이혼하라”고 성의 없이 말하며 가정폭력을 ‘가정사’나 ‘부부싸움’으로 치부하고 피해자를 탓하는 사례들이 보고됐다.
안민숙피해자통합지원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경찰의 긴급조치 내지 법원의 명령을 받은 가해 남편이 피해자 주변을 배회하거나 주거지에 침입하면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조치해야 한다”며 “제대로 분리하지 않으면 폭행과 살인, 협박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