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희대의 바람둥이로 만나는 낭만주의 미술

중앙일보

입력 2021.05.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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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5)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1756~1791)가 1787년에 프라하에서 초연한 작품입니다. 스페인의 실존 인물이자 전설적인 바람둥이인 ‘돈 후안’을 소재로 한 스토리입니다. 바람둥이의 대표주자인 돈 후안의 이야기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곤 했지요. 사회규범을 어지럽히는 사회악을 응징함으로써 미풍양속을 바로 세우려는 교육적인 소재로도 널리 사용되었고요.
 
이 오페라는 초연 때부터 엄청난 환호 속에 성공을 거두었으며, 여러 전문가 그룹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오페라로 선정하는 등 현재까지도 모차르트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막이 오르면 돈 조반니는 안나를 겁탈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그녀의 집에 침입합니다. 그녀의 비명에 안나의 아버지인 기사장이 나타나 돈 조반니와 결투하지만, 결국 그의 칼에 쓰러지고 돈 조반니는 도망칩니다.
 
길가에서 돈 조반니에게 버림받은 엘비라가 나타나 그에게 복수하겠다며 분노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복수심을 눈치챈 돈 조반니는 시종인 레포렐로에게 그녀를 떠넘기고 또 도망가지요. 레포렐로가 엘비라를 위로한답시고 돈 조반니가 만나고 헤어진 여자가 셀 수 없이 많으니 너무 억울해 말라고 하는데, 이건 더 열 받을 소리가 아닌가요?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체를리나와 마제토의 결혼을 축하하며 합창을 하고 있는데,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가 이곳에 옵니다. 첫눈에 체를리나에게 반한 돈 조반니는 압력을 행사해 그녀에게서 신랑을 떼어놓지요.
 
돈 조반니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체를리나를 유혹합니다. 체를리나는 처음엔 반항하나 결국 그의 화려함에 넘어가 그의 손을 잡고 돈 조반니의 집으로 갑니다. 가진 자의 화려한 유혹 앞에 없는 자의 무력한 욕망이 넘어가는 과정이 안타깝답니다. 도중에 엘비라가 나타나 돈 조반니의 행적을 폭로하며 체를리나에게 도망가라고 해, 다행히 봉변은 면하지요.
 
하지만 레포렐로가 능숙하게 체를리나를 저택에 잘 모셔 놓았다고 보고하자, 이에 흡족한 돈 조반니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대하고 파티를 열고 재미있게 놀자며 아리아 ‘술에 취해 정신 잃을 때까지’를 부릅니다. 빠르고 경쾌한 이 곡은 끝없는 욕망을 나타내는 유명한 노래랍니다.
 
 
돈 조반니는 또 다른 꿍꿍이가 있어 레포렐로와 서로 변장하고, 그가 엘비라와 함께 자리를 뜨도록 연출합니다. 바로 엘비라의 하녀를 노리는 것이지요. 만돌린 연주와 함께 유명한 세레나데를 부르며 그 하녀를 유혹하는데, 마제토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낫 등으로 무장하고 몰려 왔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넘보는 귀족에게 작은 혁명을 일으킨 것이랍니다. 변장한 돈 조반니를 어둠 속에서 레포렐로로 착각한 마제토가 그에게 조반니의 행방을 물으며, 그를 찾아 죽이겠다고 씩씩댑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마을 사람들을 따돌린 돈 조반니는 자신에게 저항한 마제토를 오히려 두들겨 패고 도망칩니다.
 
한편 공동묘지로 도망해 레포렐로와 지난 경과를 이야기하던 돈 조반니가 재미있다며 웃자, 묘지의 조각상이 “그리 웃는 것도 새벽이 밝으면 끝이라”고 소리칩니다. 레포렐로는 놀라 자빠지지만 돈 조반니는 조각상에 놀란 기색을 숨기고 오히려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요. 저녁이 되자 결국 천둥소리와 함께 조각상이 집에 들어와 돈 조반니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는 끝까지 거부하고 결국 지옥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지요. 지옥에서는 그에게 더 큰 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
 

반성하지 않은 돈 조반니의 최후. [사진 flickr]

 
오페라에서 돈 조반니는 체를리나를 유혹하기 위해, 자신의 농토를 경작하는 ‘을’인 소작농 마제토의 처지를 악용해 그녀 곁에서 그를 내쫓지요.
 
무력한 마제토는 자신의 연인을 지키기 위해, 동네 사람들과 힘을 모아 낫을 들고 돈 조반니에게 저항합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사실이지만, 당시 귀족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했던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는 현장입니다. 모차르트의 전작 ‘피가로의 결혼’에서와 같이, 혁명이 오페라 속에서 시작되는 셈이지요. 비록 마제토는 돈 조반니에게 두들겨 맞고 쓰러지지만, 그 장면을 보는 프랑스와 파리의 시민 관객은 진정한 혁명을 꿈꾸게 되었답니다.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마다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이 시대 변화의 선두에 앞장서곤 했지요. 당시의 미술도 낭만주의 화가인 들라크루아에 의해 새로운 혁명적인 표현기법을 보여 줍니다. 그의 대표작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입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들라크루아.

 
이 작품은 7월 혁명(1830)을 소재로 한 그림이에요. 시민들이 갈구했던 낙원을 찾고자 외치는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영웅적 이미지를 상상하고 명암을 대비시켜 극적인 분위기를 표현함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성공적으로 끌어내고 있습니다.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된 이 작품은 세로 가로 260x325㎝인 대작인데요. 작품 앞에 관객이 서면,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혁명 희생자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들어옵니다. 처참한 모습의 그 희생자들 위로 눈부신 빛을 배경으로 프랑스의 삼색기를 든 자유의 여신이 행진을 이끌고 있고요.
 
그 좌우에는 권총을 치켜든 학생, 소총을 든 부르주아와 칼을 움켜쥔 농민 등 각계각층을 상징하는 모자를 쓴 대중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뜨거운 열망을, 화가는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답니다. 왕궁으로 가는 길을 막았던 바리케이드를 넘어서는 시민의 승리를 예고합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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