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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도니체티의 ‘연대의 딸’서 만나는 로코코 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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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3)

문화적 자존감을 내세우기로는 프랑스인이 제일 아닌가요? 그런데, 외국인인 이탈리아 사람이 프랑스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노래 ‘Salut a la France(프랑스 만세)!’를 작곡해 인기를 얻은 오페라 작품이 있답니다. 바로 프랑스의 21연대에서 자라난 아가씨 마리와 그녀를 사랑한 토니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도니체티의 오페라 ‘연대의 딸’인데, 막장 드라마의 필수요소인 출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부대에서 자란 연대의 딸 마리. [사진 Flickr]

부대에서 자란 연대의 딸 마리. [사진 Flickr]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외상도 주는 부대이자 연대 중의 연대인 ‘천하무적 21연대’에서 자란 마리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는 북소리이며, ‘조국’과 ‘승리’가 그녀의 인사랍니다. 술피스 중사가 북소리를 자장가 삼아 마리를 키웠고, 그녀는 모든 부대원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답니다. 수상한 남자가 체포되어 막사에 끌려왔는데, 마리는 그가 자기를 절벽에서 구해준 외국인 청년 토니오라고 중사에게 말합니다. 토니오는 마리와 함께 지내기 위해 부대에 입대하기로 하지요. 바보같이 사랑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구속해 버리다니! 그리고는 마리에게 토니오가 다가와 사랑을 고백합니다. 마리는 토니오가 자신을 사랑해 입대까지 한 것을 알고는, 그 마음에 감동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요.

한편 부대를 방문한 후작부인은 술피스 중사와 대화하다가 자신의 여동생이 프랑스군 장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술피스가 그 아이가 딸이었느냐고 되묻네요! 부인이 깜짝 놀라며 그렇다고 하자 그는 “그 아이가 마리에요!”라며 외칩니다. 후작부인은 조카를 찾았으니 자신의 성으로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입대가 허락돼 어깨에 연대마크를 단 토니오가 기쁘게 막사로 뛰어오고, 연대원들도 이 신병을 축하해줍니다. 토니오는 아리아 ‘아! 친구들, 오늘은 좋은 날’을 부르는데, 고음이 수차례 반복되는 이 곡은 테너에게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한답니다. 많은 관객이 이 노래를 듣기 위해 공연장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토니오는 마리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뻐할지를 상상하면서 너무나 기분 좋아져 들떠있답니다. 이때 마리가 슬픈 표정을 하고 나타나 연대를 떠나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하자, 모든 연대원 특히 방금 전까지 환희에 젖었던 토니오의 충격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두 사람은 기약 없는 사랑을 약속합니다.

후작의 성으로 간 마리는 에티켓과 음악 레슨 중입니다. 천방지축인 그녀는 왜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우울하지만, 후작부인은 마리를 독일 최고의 귀족과 결혼시킬 작정이랍니다. 후작부인은 마리를 키워준 술피스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합니다. 사실 마리가 자신의 딸이며,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꼭 좋은 가문과 결혼시켜야 한다고요. 사실을 알게 된 마리는 후작부인, 아니 그녀의 어머니에게 안기며 어머니의 뜻에 따르겠다고 하지요.

결혼식이 열리고 결혼증서에 서명하려는데, 토니오와 연대원들이 식장에 뛰어들어와 아수라장이 됩니다. 마리에 대한 사랑을 공개하고, 마리도 출생의 비밀과 지나온 어린 시절을 담담히 고백합니다. 귀족들은 그녀의 당당함을 칭송해주지요.

사랑하는 토니오가 곁에 있음에도, 마리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어머니의 오랜 바람을 이뤄드리려 합니다. 마리가 결혼 서명을 하려는 순간, 마음이 변한 후작부인이 마리를 말립니다. 체면 때문에 더 이상 딸을 희생시킬 수 없다며, 마리가 사랑하는 토니오와의 결혼을 승낙합니다. 드디어 진정한 사랑이 승리했군요. 모두가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면서 행복하게 막을 내립니다.

이런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그린 화가가 있답니다. 영국의 풍속 화가 호가스인데요. 그는 로코코의 화풍을 따르면서 회화를 통한 교훈적인 사회 풍자에서 독보적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계약결혼’ 연작 6점을 보면, 당시 영국 사회의 결혼 풍속을 풍자하며 도덕률을 바로 세우고자 한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답니다.

연작의 첫 작품 ‘계약’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귀족인 신랑의 아버지가 거드름을 피우며 가문의 오래된 족보를 가리키고, 마치 귀족처럼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신부 아버지는 계약서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습니다. 관심도 사랑도 전혀 있을 리 없는 신랑·신부는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지요.

두 번째 작품에서 이 부부가 결혼 후에 각자 방탕하고 쾌락적인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다음 그림에서 신랑은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는데 아마도 떳떳하지 못한 병에 걸려서였겠지요. 네 번째 그림에서 모씨가 부인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있습니다.

'계약결혼' 중 5화 '남자의 죽음'. 호가스.

'계약결혼' 중 5화 '남자의 죽음'. 호가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순간이 닥치고야 말았습니다. 부인과 정부의 은밀한 밀회의 장소에 들이닥친 남편을 내연남이 죽이고 창문 넘어 도망가는 사태가 벌어지거든요. 여섯 번째 그림 ‘여자의 죽음’에서 부인의 정부가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이 음독자살을 함으로써 부부의 비극이 완성된답니다. 자식을 이용해 명예까지 얻으려 했던 부인의 아버지는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통감합니다.

호가스는 당시의 생활양식과 풍속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식, 예를 들어 바닥의 카펫 문양까지 아주 세밀하게 표현했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시절의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고요. 그가 있기에 영국은 비로소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연 화가를 보유하게 된 거지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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