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거머쥔 일흔네 살 배우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내 이름을 똑바로 불러 달라’로 시작했다. 영화산업을 주도해 온 서구와 마침내 어깨를 나란히 한 자신감이 ‘용서’라는 농담 속에 묻어났다.
윤여정, 한국인 첫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먹고살려고 연기, 대신 열심히 했다”
“오스카상 탔어도 나는 윤여정”
진심·겸손·유머에 지역·세대 초월 공감
“브래드 피트, 우리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나요” “일하라 잔소리한 아들 덕 수상”
윤여정은 지난 11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콧대 높은(snobbish)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말로 자신이 수상의 객체가 아닌 주인공임을 분명히 했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를 ‘로컬’ 시상식이라고 한 것과 통한다.
◆진심=‘미나리’는 재미교포 2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실화에 바탕한 작품. 윤여정은 기자회견에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진심’을 꼽으면서 “기교로 쓴 작품이 아니고 순수하고 진지한 ‘진짜 얘기’라서 늙은 나를 건드렸다”고 했다. ‘미나리’가 외국에서 평가받은 배경으론 “부모의 희생, 할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은 유니버설한 것 아니냐”고 했다.
예순 넘어 바뀐 연기 철학도 내비쳤다. “그 전까진 성과를 따지는 나름의 계산을 했지만 육십 이후론 사람이 좋으면 하자, 그렇게 사치스럽게 살자 결심했다”면서다.
◆촌철살인 유머=윤여정은 시상자인 브래드 피트를 향해 “드디어 만났군요. 우리가 털사에서 영화 찍을 동안 어디 계셨나요?”하고 익살스레 말을 건넸다. 피트는 ‘미나리’의 공동제작사인 플랜B 설립자. 턱없이 적은 제작비(200만 달러, 약 22억3500만원) 환기로 좌중의 웃음을 끌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선 “오스카상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이 되나. 대사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 죽으면 참 좋겠다”고 했다.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미나리’는 윤여정의 수상으로 오스카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